편집자주 | ‘발가벗은 힘(Naked Strength)’은 회사를 떠나 야생에서도 홀로서기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발가벗은 힘을 키워야 언제든 퇴사하고 싶을 때 퇴사할 수 있고, 야생에서 자신 있게 생존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필자는 자신이 누렸던 대기업, 임원, 억대 연봉 등의 타이틀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40대 중반에 퇴사해 전문가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야생에 소프트랜딩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데일리는 필자가 ‘발가벗은 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경험과 노하우를 매주 소개한다. 이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직장인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자신만의 Plan B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내 삶을 이끄는 동력, 즉 ‘엔진’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그 엔진을 계속해서 힘차게 펌프질하는가?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직장인,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직장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비결이 이 질문에 있다. 엔진이 꺼지면 차가 멈추듯 우리 삶도 엔진이 꺼지면 무력감과 공허함이 밀려오고 삶의 낙은 사라진다. 직장 초년병 시절,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다행히 답을 찾았다.
나는 2002년, KTF에 공채 3기로 입사했다. 국내 이동통신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이 회사는 2009년 모회사 KT에 합병돼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02년 월드컵 당시 ‘Korea Team Fighting’이라는 구호를 내건 마케팅으로도 잘 알려진 KTF는 당시만 해도 참신한 광고로 대학과 대학원 예비 졸업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 등 ‘KTF적인 생각’이라는 제목의 광고들을 보면서 나 또한 매료되었고, 이 회사에 꼭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108:1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됐다. 신입사원 연수 후 대다수가 현장으로 배치를 받았다. 나는 공학 전공이라 네트워크부문으로 배치를 받아 2년간 ‘무선망 설계 및 최적화’라는 업무를 담당했다.
종종 기지국, 중계기가 있는 50미터 철탑에 올라가야 했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일은 정말이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커리어에 대해 고민했다. 몇몇 동기들은 더 심각했고, 입사 1년 전후로 퇴사나 이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IMF 취업 여파로 정말 어렵게 입사한 회사였고, 행여나 대리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승진 전까진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군말 없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나는 다행히 승진 대상 첫해에 승진할 수 있었고, 승진 후 팀장님께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진심이 통했는지 나를 본사로 보내주셨다.
대리 시절, 나는 행복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했다. 행복한 경험은 업무로부터의 보람에서 왔다. 전략기획부문에서 일한 나는 전략 수립, 기업문화 정립, 변화와 혁신 추진 업무 등을 담당했다. 전사 차원의 큰 그림을 그리고, 회사와 구성원을 변화시키는 일을 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이때 무척 행복했다. 사람은 무언가를 배우고 지속 성장하고자 하는 ‘성장의 욕구’가 있다. 이는 매슬로의 5단계 욕구(생리 욕구-안전 욕구-애정소속 욕구-존경 욕구-자아실현 욕구) 중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에 해당된다. 대리 때의 이런 경험은 나의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켜줬고, 전문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반면 좌절도 경험했다. 과장 승진 시 2년 연속 고배를 마셨던 일이었다. 대리 때는 첫해에 바로 승진했기 때문에 탈락한 동기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 처해 보니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 팀엔 차장 승진 대상자 3명을 포함해 나까지 승진 대상자가 4명이나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잘해도 평가를 잘 받기는 힘든 구조였다. 하지만 부서에 승진 대상 선배들이 없는 동기들은 첫해에 바로 승진했다. 물론 일을 잘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운칠기삼(運七技三)도 작용했다. 여하튼, 그런 상황들을 이해한다 해도 속상했고, 한동안 퇴사와 이직을 고민했다. 연공서열대로 승진시키는 회사라면 비전도, 희망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다른 회사는 이런 문제가 없을까?’, ‘내가 정말 실력이 부족해 승진을 못한 걸까?’, ‘우리회사가 정말 비전이 없나?’, ‘내 인생의 비전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 아닌가?’, ‘승진이 내 인생의 비전인가?’, ‘승진이 안 되면 그때마다 매번 퇴사 결심을 할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그런데 자문자답을 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어갔다.
‘1. 나의 인생 목표가 승진인가? 2. 내가 열심히 일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3. 내 삶은 무엇에 의해 동기부여 받는가?’
그리고 다음과 같은 답을 얻었다.
‘1. 내 인생 목표는 승진이 아니다. 2. 그 일이 좋아서, 성장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3. 뭔가를 배우고 성장한다는 느낌을 가질 때’
여기서 잠시 심리학자 허즈버그(Herzberg)의 ‘동기부여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동기부여 이론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동기부여 요소(Motivation Factor)’와 ‘위생 요소(Hygiene Factor)’다. ‘동기부여 요소’는 한마디로 자발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드는 요소다. ‘내적 동기’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업무로부터 배우는 지식과 경험, 회사에서 듣는 양질의 교육, 워크숍 참여 등을 통해 스스로 성장, 발전한다는 기쁨을 느끼고 그로 인해 동기부여의 동력을 얻는 것이다. ‘위생 요소’는 한마디로 이게 없으면 불편하고 불쾌해지는 요소다. ‘외적 동기’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열심히 일했는데 상사가 인정·칭찬을 해주지 않거나, 인사고과가 안 좋거나, 승진이 안 된 것 때문에 불쾌하고 힘들어지는 것이다. 또 사내에서 어떤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물질적 보상, 고과 인상 같은 게 없는 것이다. 즉, 회사에서 이런 불편한 상황, 위생적이지 않은 상황을 제거해 좋은 환경을 유지하게 하는 요소를 말한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후,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내 삶이 위생 요소(인사고과, 승진 등)에 의해 좌우된다면, 결국 난 행복하지 않을 거야. 내적 동기에 집중하자’.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진리를 얻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내 가슴이 원하는 대로 살자!’, ‘일을 즐겁게 하고, 그 안에서 가치를 찾자’, ‘승진이 아닌, 외부에서도 인정받는 진짜 나의 역량을 키우자’라고 다짐했다. 이후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나에게 이 경험은 진정한 역량을 쌓기 위한 자기계발 열정을 불사르고 ‘발가벗은 힘’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재형 비즈니스임팩트 대표
전략 및 조직변화와 혁신 분야의 비즈니스 교육·코칭·컨설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KT 전략기획실 등을 거쳐 KT그룹사 CFO(최고재무책임자) 겸 경영기획총괄로 일했다.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CTI 인증 전문코치(CPCC), ICF(국제코치연맹) 인증 전문코치(ACC), (사)한국코치협회 인증 전문코치(KPC)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저서로는 《스마트하게 경영하고 두려움 없이 실행하라》, 《전략을 혁신하라》, 《식당부자들의 성공전략》, 《인생은 전략이다》가 있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