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에서] 컵 속의 물은 ‘반밖에 없다 vs 반이나 남았다’

2차 북미정상회담 실패 이후 북미간 엇박자 힘겨루기 지속
트럼프·김정은 ‘죄수의 딜레마’ 벗어나기 위한 주도권 다툼
북미대화 최종 무산은 문재인·김정은·트럼프의 정치적 대실패
문재인 ‘평화’·김정은 ‘빵’·트럼프 ‘재선’ 남북미 정상 윈윈 가능
  • 등록 2019-04-10 오전 6:00:00

    수정 2019-04-10 오전 6:00:00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 2월 2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2차 북미회담을 끝내고 밝게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게재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전쟁위협을 없애고 한반도 평화통일의 디딤돌을 마련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70년 가까이 지속된 북미 적대관계를 청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일궈낼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성과를 바탕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을 거쳐 보다 탄탄한 대통령 재선가도에 나설 수 있습니다. 북미대화의 최종적 성공은 남북미 3국 정상 모두 윈윈 구조입니다.”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실패 아닌 실패였습니다. 합의문까지 준비됐지만 북미정상의 서명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40여일이 흘렀습니다. 상황 인식은 180도로 다릅니다. 북미 정상이 원하는 바를 보다 분명하게 확인한 것 자체가 ‘의미있는 진전’이라는 낙관론에서부터 애초 합의 자체가 불가능했던 이벤트에 불과한 ‘예정된 실패’라는 비관론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집니다. 당분간 진통은 불가피하겠지만 최종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부터 2018년 화해국면 이전 최악의 상황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컵 속에 정확하게 물이 절반 남아 있습니다. 많은 걸까요? 적은 걸까요? 시선은 엇갈립니다. “물이 반이나 남아있다”는 후한 평가도 있지만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야박한 평가도 있습니다. 만약 컵 속의 물을 가득 채워야 하는 미션이 있다면 전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쉬운, 후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게 중요합니다. ‘컵 속의 물’은 북미정상의 하노이 담판 실패 이후 상황과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팩트는 단순합니다. 북미정상은 헤어질 때 웃으면서 악수를 나눴습니다. 그 지점에서부터 북미대화를 복기하는 게 우선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유일한 해법입니다.

“컵 속의 물,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북미정상, 죄수의 딜레마 속 3차회담 난망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는 미묘합니다. 북미간 엇박자는 대화재개를 위한 주도권 다툼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찰떡궁합을 과시했던 한미동맹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3차례 정상회담을 거치며 끈끈했던 남북관계도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사실상 대화의 동력을 되살리기 힘든 상황입니다. 혹 협상이 이뤄진다한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어떤 보상도 없다는 강경론이 득세합니다. 어쩌면 한국전 이후 70년 가까이 이어져온 적대관계 속에서 정상회담 한두 번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해결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됩니다. 3차 북미정상회담 재개는 불투명한 게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하다는 분석합니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북한의 비핵화 이행 속임수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보다 강력한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힘의 논리입니다.

북미정상은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밀당게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미정상은 1차 회담에서 큰 틀의 합의를 이뤘습니다. △북미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전쟁포로·유해송환 등 4개항입니다. 한마디로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맞교환입니다. 2차 회담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합의가 나왔어야 합니다. 일괄타결식 빅딜을 선호하는 미국과 단계적 접근법을 강조해온 북한은 입장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디테일의 악마’였습니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이후 미국이 전면적인 체제보장에 나설 것인지 의심합니다. 이는 핵포기 이후 카다피 정권 붕괴로 이어졌던 리비아모델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미국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재완화와 체제보장은 없다는 논리가 우세합니다. 과거 1·2차 북핵위기 당시 외교적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가 적지 않습니다. 또 북핵협상에서 양보하는 모습이 비춰질 경우 슈퍼파워로서 미국의 패권적 질서에도 금이 갈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27일 오후(현지시간) 2차 북미정상회담장인 하노이 회담장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나 만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컵 속의 물, 절반이나 남았다”…북미정상, 평화열차 재탑승 이외의 대안은 없다

상황은 몹시 어렵습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시각은 있습니다. 2차 북미회담에서 합의 실패는 비핵화 정의와 방식을 둘러싼 입장 차이도 있었지만 ‘코언청문회’라는 미국정치 내부적 요인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한반도 평화열차에 탑승한 문재인·김정은·트럼프 등 남북미 3국 정상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점도 긍정적 전망을 갖게 하는 요인입니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가 절대적입니다. 취임 이후 외교안보 성과를 축으로 국정운영을 주도해온 만큼 ‘베를린구상’으로 상징되는 한반도 평화구상이 실패할 경우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국면에 놓일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인민들에게 풍성한 빵을 선물해야 하고 국제사회의 고립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는 체제보장은 물론 북일수교와 식민지 배상으로 이어지면서 경제발전의 기초를 닦을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년 재선 레이스가 본격화한다는 점에서 올해 말까지는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외교적 성과와 노벨평화상 수상이 필수적입니다. 남북미 정상의 이러한 정치·외교적 목표 달성은 2인 3각의 레이스입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열차에서 잠시 하차한 것일 뿐입니다. 일시적인 냉각기 속에서 대화를 통한 비핵화 해법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설령 북미 교착상태가 다소 장기화된다 해도 70년 적대관계를 감안할 때 ‘조족지혈’의 기간입니다. 북한의 핵실험 재개·ICBM 추가 발사가 없거나 한미양국이 추가 제재나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을 재개하지 않는다면 평화모드는 여전히 유지되는 것입니다. 사실 북미정상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열차 재탑승 말고는 대안도 없습니다. 2차 북미회담 실패 이후 북미정상의 상호비난이 없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조성된 한반도 대화해 무드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북미정상이 유치찬란한 ‘핵단추 크기’ 공방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재개나 미국의 군사적 응징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참담한 외교적 실패입니다. 다만 바보가 아니라면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입니다.

‘문재인 매직’ 다시 한 번 통할까?…김정은 위원장의 전향적인 화답 필요

불가능해보였던 북미대화를 성사시켰던 ‘문재인 매직’이 다시 한 번 통할까요? 현 상황은 북미 양측이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를 애타게 기다리는 단계입니다. 북한이 미국을 직접 자극하기보다 우리 정부에 크고작은 불만을 쏟아내는 것이나 미국이 동맹의 관점을 강조하며 남북관계 속도조절론을 제기하는 건 역설적으로 북미가 문재인 대통령의 본격 중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한미정상회담차 방미길에 오릅니다. 이후 대북특사 파견 또는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보다 유연한 접근과 전향적인 화답이 절실합니다. 북한과 달리 우리나라와 미국은 최고 권력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닙니다. 북핵협상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보수세력 반발과 남남갈등이, 미국도 주류사회의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미 양국의 국내 정치적 역학관계와 정서를 고려해 어떤 카드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향후 북미협상의 속도와 폭은 물론 내용 자체가 완전히 달리질 수 있습니다.

컵 속의 물은 절반이나 남았나요? 아니면 절반 밖에 남지 않았나요? 전자라면 북미대화 재개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해결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렵더라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막중해집니다. 후자라면 현 단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이행과 실천은 북한의 거짓선동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놀음에 불과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 이상 북녘 하늘을 바라볼 필요도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른바 ‘스냅백(snapback, 합의 위반시 혜택 철회)’을 전제로 제재완화에 대한 미측의 전향적인 답변만 얻어도 향후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큰 무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2일 금요일 오후 늦게 미국순방을 마치고 귀국할 예정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묻어날까요?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할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어느 쪽에 베팅하시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30일 오후(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코스타 살게로 센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추위 속 핸드폰..'손 시려'
  • 김혜수, 방부제 美
  • 쀼~ 어머나!
  • 대왕고래 시추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