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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대선패배 이후 야당의 처지는 난감합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과의 지지율 비교는 무의미한 수준입니다. 대선 이후 6개월 이상 50% 안팎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벌이는 민주당을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내년 지방선거 전망도 꽤나 불투명합니다. 현 야당의 상황은 단순히 어렵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존재의 기반 자체가 뿌리째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모두 내부에서 상처가 곪아터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혁명적 수준의 변화와 새로운 리더십의 탄생이 절실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모두 당의 간판이 지난 대선에서 패배했던 사람들입니다. 홍준표 대표, 안철수 대표, 유승민 대표가 또다시 당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과거 대선 패배 이후 유력 정치인들이 은인자중하면서 권토중래를 다짐하던 관행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홍준표 대표, 안철수 대표, 유승민 대표가 다시 전면에 나섰지만 당 안팎의 사정은 녹록지 않습니다. 사실 ‘대선승리’ 문재인 vs ‘대선패배’ 홍준표·안철수·유승민 구도는 필패 구도입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대선 득표율의 두 배에 육박하는 70% 이상입니다.
대선패배·3선개헌 무력감에 빠진 야권을 일깨운 YS의 40대 기수론
현 야당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리더십입니다. 한마디로 ‘세대교체’입니다. 한국정치에서 40대 기수론은 세대교체와 동의어입니다. 지난달 서거 2주기를 맞았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젊은 시절 주창한 용어였습니다. 때는 1969년입니다. 당시 야당은 1963년 5대 대선과 1967년 6대 대선에서 2공화국 시절 대통령을 지냈던 윤보선을 후보로 내세웠지만 5.16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에게 두 번이나 패배합니다. 특히 5대 대선(공화당 박정희 46.64% vs 민정당 윤보선 45.09%)의 경우 1.5% 정도의 격차로 아쉬운 패배를 당했습니다. 박정희는 여순반란사건 시절 남로당원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공산주의자였다는 폭로가 나올 정도로 선거전은 그야말로 치열했습니다. 두 번의 대선 패배에 이어 1969년 박정희 주도의 ‘3선 개헌’까지 이뤄지면서 야권은 그야말로 기나긴 무력감에 빠져듭니다.
한국 정치를 뒤흔든 40대 ‘세대교체의 새 바람을 열다’
한국정치에서 40대 기수의 전면 등장은 혁명적 변화와 동의어입니다. 옳음과 그름의 유무와 상관없이 살펴본다면 박정희와 김종필의 등장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 산업화와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1917년생인 박정희의 경우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45세에 불과했습니다. 만 나이로는 고작 43세입니다. 김종필은 1926년생으로 1961년 불과 36세의 나이에 제1대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했습니다. 한국정치의 양대 산맥인 YS와 DJ 역시 40대 기수론의 상징입니다. 1927년생인 YS는 1969년 불과 43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을 주장했습니다.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맞붙은 김대중의 나이 역시 48세에 불과했습니다.
과거 여야를 가리지 않고 40대 기수론의 상징으로 불리던 차세대 리더들이 있었습니다. 1953년생인 정동영은 정계입문 4년 만인 2000년 48세의 나이에 DJ의 최측근이었던 권노갑 고문의 2선 후퇴를 주장했습니다. 1959년생인 유시민이 “화염병을 들고 다시 바리케이트 앞에 서는 심정”이라며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수호천사’를 다짐한 것은 불과 44세의 나이였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이후 보수의 차세대 리더로 불렸던 오세훈의 경우 1961년생으로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선으로 가는 지름길’인 서울시장에 당선됐을 때 나이가 46세였습니다. 아울러 참여정부 시절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며 여론의 주목을 받았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둘 다 1965년생으로 2002년 대선 당시에는 마흔도 안된 38세였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으로 당선됐을 때도 46세에 불과했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야당과 보수의 부활은 필요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고 이영희 선생의 어록을 굳이 인용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보수와 야당의 궤멸은 한국사회의 비극입니다. 마라톤에서 경쟁자 없이 홀로 42.195km를 완주할 경우 기록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진보진영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서도 보수와 야당의 부활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누가 나서서 혁신의 깃발을 들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사실 야권과 보수진영에서 40대 기수론의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이 지나치게 높은 데다 세대교체가 쉬운 구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달리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40대 기수론과 세대교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977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41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역시 1971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47세입니다. 더 쉬운 예를 들면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도 40대 기수론은 적지 않았습니다.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가 대표적입니다. 오바마는 특히 대세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 시대까지 열었습니다.
대선 참패 이후 야당의 리더십은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사실상 올드보이의 놀이터입니다. 또다시 당의 간판으로 나선 인사들은 새로운 비전과 부활의 전망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 리더십으로 야당의 위기극복은 난망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파면에 따른 정치적 자산과 부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자유한국당은 ‘아무말 대잔치’ 공연장으로 전락했습니다. 과거 친문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딴살림을 차렸던 국민의당은 또다른 이름의 패권주의 공방으로 아주 시끄럽습니다. 국회의원 20석 기준의 원내교섭단체가 붕괴된 바른정당은 소속 국회의원 숫자가 축구팀(11명)에서 야구팀(9명) 이하로 내려앉을 처지입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40대 기수론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물결이 절실합니다.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40대 기수론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그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옛이야기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을까요? 보수와 야권의 내일이 문득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