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칼럼] '혁신자의 딜레마' 그 달콤한 유혹 벗어나야

  • 등록 2016-10-28 오전 5:00:00

    수정 2016-10-28 오전 5:00:00

핀란드 국민들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처절한 실패 앞에 옷깃을 여민다. 지금으로부터 6년전인 2010년 10월 13일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는 수많은 인파가 현수막을 내걸고 분기탱천한 노기를 뿜어냈다. 현수막에는 ‘내셔널 페일러 데이’(‘National Failure Day)라고 쓰여 있었다. 국가적 모욕을 당한 ‘국치일’(國恥日)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일에 버금갈 정도의 국민적 공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핀란드 국민의 자랑거리인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가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하는 것에 대한 충격과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현장이었다.

노키아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커넥팅 더 피플’을 모토로 한 때 전세계 휴대폰 시장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1998년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후 2010년까지 10여년간 선두 자리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은 노키아였다. 2000년대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0~25%를 노키아가 책임 졌으니 노키아가 핀란드 경제의 핵심축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핀란드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몰빵 경제’의 위험을 깨달았어야 했다.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피닉스(불사조)가 아닌 한 마리의 새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노키아 몰락으로 대혼란에 빠졌다. 핀란드 경제는 2012~2014년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실업률은 10%대로 치솟았다.

첨단기술이 촌음(寸陰)을 다퉈가며 등장하는 시대에 노키아는 승자의 샴페인에 취해 다가오는 IT혁명에 대비하지 못했다. 노키아가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을 지 모르지만 기술 혁신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한 방에 훅 가는 세상임을 일깨워주는 교훈임에 틀림없다.

시선을 지구 동쪽으로 돌려보면 불현듯 ‘노키아’ 데자뷔가 떠오른다.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백척간두에 서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노트7 발화사태로 현대차는 에어백 결함 등 세계 초일류기업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품질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연간 매출액이 한국 GDP의 3분의 1로 한국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휘청거리면서 한국경제호(號)는 격랑에 휩싸였다. 노키아는 급변하는 사업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휴대폰 사업이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시장변화 대응 소홀과 비효율적 조직 관리, 그리고 승자의 저주라는 3대 악재가 휴대폰 거함(巨艦) 노키아를 침몰시켰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노키아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저서 ‘혁신자의 딜레마’( The Innovator’s Dilemma)에서 세계적 우량기업이 시장지배력을 잃는 원인을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혁신자의 딜레마 희생물이 된 노키아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달콤한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게임의 룰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일궈내야 한다. 초접촉사회를 맞아 시장과 고객의 변화에 둔감하고 디지털 기술의 혁명적 변화를 외면하는 ‘나홀로 갈라파고스’ 프레임에 함몰되면 인공지능(AI)과 로봇, 사물인터넷(IoT)으로 요약되는 제4차산업혁명의 높은 파도에 휩쓸려 좌초할 수 밖에 없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시장과 고객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시대적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라는 점이 노키아 몰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때마침 등기이사로 선임돼 오너의 책임경영을 본격화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장에 박수를 보내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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