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청담동 주식부자'와 방송의 공공성

  • 등록 2016-09-07 오전 4:00:00

    수정 2016-09-07 오전 4:00:00

[하재근 문화평론가] 케이블TV, 종합편성채널(종편) 등 예능프로그램에 ‘주식부자’ 또는 ‘백만장자’라는 타이틀로 출연해 마치 연예인처럼 활동해온 사람이 최근 사기 혐의로 긴급체포돼 충격을 주고 있다. 개미 투자자들은 그의 호언장담에 빚까지 얻어 투자했다가 상당한 손실을 봤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무조건 믿고 무리하게 투자했다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한 개미 투자자들의 신뢰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특정 개인에 일반 대중이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된 데에는 방송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많은 예능프로그램이 그를 섭외하며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어줬다. 그가 TV 예능토크쇼에서 재테크나 금융 관련 얘기를 하면 주위 연예인들은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하며 경탄의 시선으로 쳐다봤다. 이런 것들이 그의 공신력을 높여줬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일부 TV 방송프로그램이 그가 화려하게 사는 모습도 공개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주식부자를 맹신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건과 TV 방송과의 함수관계를 파악하려면 방송의 공정한 역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예능트렌드가 바뀌면서 전문가들이 대거 방송에 등장한다. 과거 예능은 연예인들만의 영역이었지만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얘기에 일반인들이 염증을 느끼면서 이제 전문가들의 깊이있는 강연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예능이 정보와 재미를 결합한 ‘인포테인먼트’로 진화하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에 ‘다채널 경쟁’ 환경까지 더해졌다. 많은 방송사가 앞다퉈 예능제작에 나섰는데 싼 제작비로 안정적인 시청률을 올리는 데에는 전문가들이 효자가 된 셈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영역이 더욱 넓어져 이제는 인포테인먼트뿐만 아니라 일반 엔터테인먼트 예능까지 전문가들이 진출하는 추세다. 이번에 논란이 된 주식부자도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의 활동영역이 이처럼 커지고 있지만 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TV방송 제작진들이 제대로 깨닫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TV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믿을만하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연루된 연예인 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가 방송에 나올 정도라면 업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방송사가 어련히 알아서 해당 전문가의 실체를 검증하지 않았겠는가’라는 생각이다.

요즘은 의사나 주식투자전문가외에 변호사, 부동산 전문가, 창업 전문가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예능에 진출한다. 또한 방송사는 외모와 말솜씨를 감안해 전문가를 섭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다 보니 한 인포테인먼트 방송에서는 의사들이 유산균으로 불임이 치료되거나 물구나무를 서면 발모 효과가 있다는 등 황당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어느 식재료가 항암제보다 효과가 만 배 뛰어나다는 출연자도 있었다. 일부 병원에서는 방송홍보전문가를 통해 협찬비를 제공하며 의사를 출연시킨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예능이 시청률만을 계속 신경 쓰며 자극적인 방송을 한다면 언제 어느 부문에서 문제가 터질지 알 수 없다.

과거 방송에서 전문가 영역이 제한적일 때에는 부실섭외에 따른 폐해가 크지 않았지만 요즘과 같은 전문가 전성시대에는 방송이 그릇된 섭외를 할 경우 일반인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는 것이다. 방송 출연자를 무조건 믿는 일반인들의 사고방식도 문제지만 그런 대중심리를 뻔히 알면서도 방송사가 전문가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방송은 시청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공공재다. 인포테인먼트 트렌드와 전문가들의 방송진출이 계속 이어지는 시대적 추세를 감안할 때 지금이라도 방송사들의 공공재의 중요성을 깨닫고 책임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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