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것들은 편리함을 쫓든 호기심을 쫓든 간에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후세에 물려줄 많은 것들 중에서 기계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보다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남겨주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인간 생활에 대한 여러 단면들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듯 묘사하는 풍속화로 세기의 대결을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풍속화의 대가인 혜원 신윤복의 연작들이 새삼스레 떠오르는 것은 시대적 상황을 기발한 묘사로 해석하는 현실주의적 관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신윤복의 풍속화는 혼란의 시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기발하게 표현하였기에 현재의 상황을 그의 관점에서 보고자 하는 이유이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 중에서 ‘연소답청(年小踏靑)’은 봄을 시샘하듯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는 겨울에게 그리고 조금씩 변하고 있는 현재의 시간으로 볼때 이 봄에 가장 적합한 선택이 아닌가 한다.
분홍빛 진달래가 물들이는 봄의 향연은 사랑의 충만함을 느끼게 충분하리라. 원래 분홍색은 긴장감을 완화시켜 주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이르게 하여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해 애정이 넘치도록 해주는 색이다.
연소답청에서 분홍색의 진달래가 봄기운과 애정을 극도로 고조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진분홍의 진달래가 산기슭 아래에서 함초롬하게 고개를 내밀고 기생의 트레머리 위에 꽂힌 농염한 진달래와 은근히 드러내보이는 붉은색 말안장, 기녀의 말 고삐를 부여잡고 있는 양반의 붉은 저고리까지, 봄나들이에 들뜨고 사랑 놀음에 신이 난 그날의 흥분됨을 봄이 품고 있는 색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조선사회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엄격한 신분제도 사회였다. 양반과 상민을 구분하는 반상제도는 위와 아래를 엄격히 구분하고 서로의 위계를 철저히 두어 상하관계를 분명히 했다. 신분에 의한 차별이 상식으로 여겨졌던 세상으로 사회적 역학관계는 복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역대 왕조들은 복식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하니 복식이 주는 중요성이 어떤 것보다도 큰 신분을 나타내는 척도였던 것이다.
복식(服飾) 뿐만 아니라 복색(服色)으로까지 규제를 하였는데, 서민은 소박한 직물의 사용과 하양, 두록색, 갈색 등의 색으로 제한하고 민저고리에 고름만 진한 색 혹은 다른 색으로 달아 입도록 했다. 양반들은 비단 등의 고급스러운 직물을 사용하여 다채롭게 염색하여 한껏 멋을 부릴 수 있었고 예외적으로 기녀들은 법령에 의한 복식금지 예외 대상으로 정해져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활문화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색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때문에 기녀들의 옷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의례적 성격 뿐만 아니라 색채 선호도를 동시에 표현한다는데 의미가 있고, 신분상 천인 계급에 속했지만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차별화된 복식구조 속에서도 학문적 소양을 겸비한 기녀들의 화려한 색들은 유희적 수단을 넘어 가시적인 사회적 상징물로 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