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th SRE]대한항공, 남 도울 여력 있나

제수씨에 지원 사격
  • 등록 2013-11-13 오전 7:00:00

    수정 2013-11-13 오전 7:00:00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1500억원을 지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에서는 냉소가 흘러나왔다. 한 크레디트 관계자는 “제 코가 석 자”라는 격한 반응까지 보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한항공의 재무상태가 다른 기업을 도울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최근 재무 위험이 커지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18회 SRE에서는 응답자 111명 가운데 36명(32.4%)이 대한항공의 재무구조가 현재 신용등급인 ‘A 부정적’에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현대그룹과 한진해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표를 받았다.

한진해운의 재무위험도 대한항공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시장은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2006년 한진중공업과 메리츠금융그룹이 차례로 한진그룹의 품을 떠났지만 한진해운은 예외였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등이 대한항공과 그 계열사 지분을 매각 정리한 것과 달리 대한항공과 그 계열사인 한국공항은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을 유지했다.

이번 1500억원 지원으로 대한항공은 한진해운 지분 36.56% 보유한 한진해운홀딩스 지분 16.71%를, 한진해운 담보 지분 15.33% 등 한진해운의 지분 20% 이상을 보유하게 됐다. 시장은 대한항공의 한진해운 지원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이 때문에 한진그룹은 18회 SRE에서 최근 펀더멘털이 약화된 그룹을 묻는 조사에서 응답자 111명 중 55표(49.55%)를 받으며 2위에 올랐다. 대한항공의 한진해운 지원이 발표되기 전 진행된 설문조사임을 고려하면 시장의 우려가 현실화한 셈이다.

추가 지원 가능성..동시에 위기 온다

시장에서는 한진해운이 빠른 시일 안에 영구채를 발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12월 기업어음(CP) 만기를 막기 위해 대한항공을 상대로 유상증자를 실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계열분리를 추진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최대주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유상증자는 최대 1000만주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금액으로는 500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자금 사정을 볼 때 종전 지원금 1500억원에 500억원을 추가한다고 해서 바로 재무 안정을 꾀하긴 어렵다. 12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CP만 1050억원이기 때문이다. 이에 경영권 위협을 감수하고서라도 추가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진해운을 품을 야심을 드러낸 대한항공이 추가 지원에 나설 것을 예상하긴 어렵지 않다.

특히 대한항공이 한진해운 지분 확보를 위해 지배구조 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지난 9월 대한항공은 한진칼과 분할하며 ‘한진칼 - 대한항공 - 한진해운홀딩스 - 한진해운’으로 이어지는 지주사 체제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진칼이 보유한 대한항공 지분은 6.76%에 불과하다. 지주회사관련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한항공을 지주회사에 편입하려면 한진칼이 대한항공 지분 2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대한항공이 지주사 체제에서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항공이 지주사 체제에서 빠질 경우 대한항공은 한진해운홀딩스를 거치지 않고도 한진해운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한 SRE 자문위원은 “위기가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무릅쓰고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을 지원하며 ‘육(한진)-해(한진해운)-공(대한항공)’으로 이어지는 운송사업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며 “한 배를 탔다는 사실을 공표한 이상 추가 지원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봤다.

제 것도 못 챙기는데..한진해운 돕나

그러나 지금 대한항공은 다른 기업을 지원할 만큼 재무상태가 튼튼하지 못하다. 2006년 말 6조668억원에 이르렀던 별도기준 순차입금 규모는 올해 상반기 말13조4311억원으로 7년 새 두 배로 확대됐다. 항공기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2011년 대당 4400억원에 이르는 에어버스 A380 5대를 도입하는 등 항공기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6월 말 기준 보잉사 등과 체결한 항공기 구매계약은 69억9100만달러다. 항공기를 도입하는 데 7조여원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항공기 도입이 마무리되는 2016년까지 재무부담은 계속될 전망이다.

투자 규모가 확대됐지만 이를 부담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조정영업이익(EBIT)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상반기 별도기준부채비율은 1087.5%로 시장의 상식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2010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2조2463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해 차입금이 일부 줄기도 했지만 2011년 이후 세계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항공산업도 함께 불황을 겪고 있다.

특히 타격을 입은 부문은 화물사업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경기 침체로 IT산업의 수출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2010년을 기점으로 운송량이 줄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항공운송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 전 세계 총 화물수송량이 전년동월 대비 1.2% 증가하면서 최근 18개월 동안의 정체에서 벗어났지만 주요 성장요인인 유럽시장이 아직 불안정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어렵다.

여객 부문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상반기 국내와 국외여객실적은 각각 339만7269명, 811만6311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14.5%, 2.6% 감소했다. 한 SRE 자문위원은 “엔저 현상 등으로 일본 관광객이 줄고 있는 데다 저가항공사(LCC)의 영향으로 가격 인상도 어려워지는 등 업황이 안 좋아졌다”고 진단했다.

지금은 재무구조 개선할 때 재무구조가 악화하면 기업은 수익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여야 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영업 레버리지 규모를 키워가는 대한항공의 경우 업황이 회복세를보일 경우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당장 업황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용을 줄여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비용절감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 대신 투자를 선택했다. 필요한 자금은 항공기 등 자산을 담보로 돈을 끌어오는 자산유동화차입금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 말 1조1856억원이던 자산유동화차입금은 상반기 말 1조3808억원으로 늘어났다.

일부 자산은 방치된 상태인 것도 문제다. 2008년 2900억여원에 사들인 서울 인사동 부지는 서울시 등의 반대로 수년째 공터로 남아 있다. 묶여 있는 자산을 그대로 두고 구조조정 대신 빚만 늘리고 있는 셈이다.

시장은 대한항공의 재무구조 개선 노력이 없다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본다. 부채비율이 1000%를 웃도는 A급 기업은 없다는 얘기다. 한 SRE 자문위원은 “수익성이 저하되고 있는 때 능력대비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며 “S-Oil 지분, 부동산 정리 등 실질적인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의 재무구조 개선의 길은 아직 멀어보인다. 10월24일 대한항공은 오는 2018년까지 신규 항공기 12대를 들여오는 새로운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6월말 기준 항공기 도입에 예정된 투자금액 7조원에 3조9818억원을 추가 투입하는 것으로 투자규모만 10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18th SRE’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18th SRE는 2013년 11월13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61, min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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