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빌리느냐 보다, 누구한테 빌리냐가 관건
자금난을 겪는 추진위원회(조합)가 통상 기대는 곳이 정비업체다. 애초 조합은 전문성이 없어서 스스로 정비사업을 하지 못한다. 이런 터에 조합은 반강제적으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정비업체)의 도움을 받는다. 건축사·감정평가사·법무사 등으로 이뤄진 정비업체는 동의서 걷기와 기본계획 수립부터 시작해 모든 사업 단계에 관여한다.
이런 정비업체가 전국에 수백 개고, 서울에만 193개(1월 기준)가 있다. 정비업체 간에 수주 경쟁은 사업비를 조달하려는 조합의 필요와 맞물려 관계가 형성된다. 관계가 어긋나지 않으려면 업체 입장이 반영돼 조합의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 이게 늘 조합원의 이익과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관계 형성의 선후가 바뀐다. 조합이 정비업체를 선정하는 게 아니라, 정비업체가 조합을 만든다. 건설사와 정비업체가 특정 지역에서 들어가 여론(정비사업)을 조성하고, 인물(조합장)을 키워, 조직화(조합)를 지원하는 식이다.
경기 성남의 재건축 조합원은 “A 건설사가 우리 지역에 사람을 풀어 자기에 유리한 인물을 조합장에 앉히고 시공사로 선정되려고 작업한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A 건설사는 내부 사정을 고려해 시공자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공을 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분쟁은 조합 내부에서 민·형사 사건으로까지 불거진 상태다.
유착으로 이어지는 채무관계 끊어내려면
사실 조합원이 조합 임원을 견제하면 그만이다. 주요한 조합 의사결정은 총회 의결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서울의 재건축 비대위 조합원은 “이르게 사업을 마무리하려면 되도록 조합 집행부를 지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조합원이 뜻밖에 상당수”라며 “조합 내부에서 자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벽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조합과 업체 간에 채무관계를 차단하면 폐단을 예방할 수 있다. 서울시 정비사업 융자금 제도는 이런 취지에서 마련돼 평가받는다. 2009년 시작한 사업은 찾는 조합이 많아 매해 마련한 예산이 부족하다. 원하는 모든 조합이 혜택을 보지 못하니 자금을 대줄 업체를 찾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