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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일본 자동차 전문지 포린(Fourin)은 한국 자동차산업이 연구개발(R&D) 투자 부진과 강성 노동조합 등으로 인해 오는 2025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그러나 위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내수 판매 부진과 수출 물량 감소가 지속되면서 올해 자동차 생산은 400만대를 밑돌 것이 확실해 보인다.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감소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1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1차 부품업체 수는 831곳으로 전년보다 20개 감소했다. 아직 통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올해도 20여곳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동시다발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어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동차부품업계의 위기는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 부진 탓이 크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완성차 5개사에 매출을 의존하며 미래차 대응에 뒤쳐진 점도 위기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완성차 의존도 높아 동반 위기 맞아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부품업체들은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와의 거래가 대부분”이라며 “자동차 판매가 잘 될 땐 문제가 없었지만, 판매가 줄어드니까 부품업체들이 먼저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래차 대응에 있어서도 현대차가 모듈이나 전장 등을 그룹 관계사를 통해 수직계열화하니까 비계열사의 시장이 줄어든 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매출액 6조원에 달하는 만도 같은 대형 부품업체조차 감원에 나서고 있다면, 중소 업체들은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R&D 투자 미미해 해외 시장서 경쟁력 낮아
부품업체들이 국내 완성차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선 해외 업체로 판로를 다각화해야 하지만, 단기간에 쉽지 않은 문제다. 특히 그동안 R&D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도 낮은 상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부품업계의 R&D 투자는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미흡한 수준이다. 2017년 기준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현대모비스 2.4%, 만도 5.6%, 한온시스템 5.0% 수준이다. 이에 비해 해외 업체는 보쉬 7.6%, 덴소 8.8%, 컨티넨탈 10.3% 등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업체들은 R&D 투자가 아예 없는 곳이 대다수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관련 R&D 투자는 대기업이 89%를 차지한다. 중소 업체들은 완성차 업체가 시키는대로 만들면 되기 때문에 R&D에 투자할 필요성조차 못 느낀다”며 “판로를 다각화하려면 현대·기아차 의존도를 낮추고 경쟁력을 키워 판로를 해외로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