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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6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건 조건이 불리해도 얼른 개발했으면 하는 마음에 다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뭡니까, 개발계획이 장난도 아니고, (서울시가) 사업승인까지 다 해놓고선 이제와서 전면 재검토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 18일 오후 들른 ‘을지면옥’을 비롯한 노포 철거 논란이 불거진 서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구역 내 3-1·4·5구역은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3구역 한 켠에 마련된 컨테이너 박스에 모인 토지 소유자 10여명은 격앙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서울시장의 말 한마디에 개발계획 방침이 바뀌면서다.
1980년대 초 이 지역에서 장사하며 가게를 마련한 홍모(80·남)씨는 이같이 토로하며 “시에서 하라는 대로 따랐는데 이제와서 또 계획을 바꾸는게 말이되냐”며 “법대로만 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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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06년 세운상가를 허물어 공원과 100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무산됐다.
정체되던 계획은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후인 2014년 세운상가와 그 일대를 최고 27층 높이의 아파트와 업무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을 갖춘 건물 6개 동을 짓는 안으로 변경됐다. 이 가운데 3구역은 4만6072.3㎡ 크기인 3구역을 10개의 소구역으로 쪼개졌다. 사업비는 1조300억원 수준이다. 서울시는 3구역을 포함한 세운상가 일대를 창의제조산업을 중심으로 한 ‘메이커 시티’(maker city)로 만들겠다며 ‘2020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평양냉면집으로 유명한 을지면옥과 함께 안성집·양미옥·조선옥 등 여러 노포 철거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박 시장은 지난 16일 간담회에서 “(공구상가와 노포를 보존해야 한다는) 상인들의 주장에 동의한다”며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새로운 대안을 발표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에 있던 (노포 등) 부분을 보존·유지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대안이 마련됐더라도 세운3구역이 법적으로 해오던 사항이기에 토지 소유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와의 세부 조정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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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소유주 평균 50㎡ 보유…“내가 죽기 전에 개발될지 모르겠다”
토지주 엄모(79·남)씨는 “보상비를 받은 세입자가 이미 이주해 (보유한 토지에서) 나올 세도 없고 세금만 나온다”며 “죽기 전에 개발돼 완공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소유주 A씨는 “도로변에 맞닿은 구역을 제외하면 이미 슬럼화한 데다 기름으로 터가 오염돼있고, 불법 증·개축으로 노후화했다”며 “개발되지 않더라도 성수동 카페거리처럼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세운3구역에서 콤프레셔 업체를 운영하며 추진위원장까지 지냈던 김모씨는 “서울시만 믿고 여태껏 사업을 진행해왔던 우리는 대체 뭐가 되는 것이냐”며 “이미 임차인을 내보내고 보상해줬는데, 하루아침에 (개발을)보류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이번 논란이 불거지게 된 원인이었던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과 세운3구역은 전혀 다르다고 토지주는 주장했다. 공구상가가 활성화한 수표지구는 아직 사업시행인가도 받기 전에 보상 대책도 없이 세입자 이주를 추진한 반면 세운3구역은 대체영업장과 우선분양권을 제공하는 등 이주 합의가 100% 완료됐다. 이들 토지주는 오는 21일 오후 박 시장 면담을 요청하고 탄원서를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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