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퇴사학교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조직의 저(低)성과자나 부적응자들일까. 만일 그렇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두 손들고 환영할 일이다. 일단 채용하면 여간해서는 해고하기 어려운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말이다. 그런데 퇴사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라는 고민과 자기성찰이 절실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입시에 목매고 대학 들어와서는 취업에 올인하다 보니 정작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삶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지 못한 채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고성과자일까 아니면 열정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생계를 위해 기계처럼 출퇴근하는 사람들일까.
회사 입장에서는 채용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직관리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잠재력과 자기 고민이 많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이직을 택하는 반면 잠재력이 별로 없고 다른 대안적 고민도 하지 않는 직원들은 끝까지 회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순응성이 가장 중요한 조직의 가치라면 큰 고민이 없겠지만 지금처럼 역동적인 환경에서 끊임없이 자기부정을 해보고 번뇌하는 직원이 오히려 무언가 새로운 발상을 해낼 가능성이 크다.
직장인들의 자괴감은 비단 민간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젊은 검사 기사를 읽으면서 마치 내 가족의 일인 것처럼 가슴 아팠다. 내용인즉 일도 잘하고 성격도 활달한 초임검사가 “일이 너무 많다,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데 사건은 늘어만 간다. 물건 못파는 영업사원이 이런 심정이겠지”라는 고민 끝에 자살한 것이다. 그럼 검사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하면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의 고민은 여기서 검사를 그만두면 평생 실패자로 낙인 찍힐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퇴사학교 같은 것이 진작에 있었더라면 혹시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퇴사학교를 설립한 젊은 교장은 말한다. 퇴사를 하지 않고도 자아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들을 회사와 같이 해결하면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말이다. 좀 더 다양한 퇴사학교가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리고 학칙은 이렇게 개정했으면 더 좋겠다. ‘회사가 퇴사학교 다니면서 많은 고민하도록 격려하기’, ‘회사에 염증이 나고 좌절하는 순간 언제든 학교홈피 들어가 미래꿈꾸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