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미 웨일즈 위키피디아 공동창업자는 한국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폰을 쓰고 현대차를 몰면서 스마트폰에 카카오톡을 깔 정도로 한국 제품에 대해 호의적이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한국 내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아쉬움을 표했다.
갤럭시폰에 카톡을 쓰는 웹 2.0시대 아이콘
지난 11일 이데일리가 주최한 ‘제6회 세계전략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마치고 인터뷰룸을 찾은 웨일즈. 한창 집단지성의 힘에 대해 얘기하던 중 어디선가 “카톡, 카톡”하는 카카오톡 메시지음이 들렸다. 인터뷰 녹화용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 현장 스태프들의 휴대폰 진동 설정을 철저히 점검했는데도 느닷없이 카톡 알림소리가 들린 것.
인터뷰 흐름을 뚝 끊은 소음을 낸 주인공은 바로 웨일즈였다. 서둘러 안주머니에서 갤럭시폰을 꺼낸 그는 멋쩍게 웃으며 “바로 어제 카카오톡을 깔았는데 친구한테 메시지가 왔다”며 진동으로 바꿨다. 그는 카카오톡에 대해 연신 “대단하다(Great)”는 말을 내뱉으며 “메시지 알림음도 귀엽고 디자인도 좋아 상당히 마음에 든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인터넷 시장은 그가 늘 예의주시하는 곳이다. 상당히 혁신적인데다 늘 한발 앞서 있기 때문에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위키피디아를 긴장하게 하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웨일즈는 “위키피디아에 정보를 입력하는 이들이 네이버나 다른 포털에서도 열심히 질문에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며 “때문에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경쟁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내에서는 혁신적이고 훌륭한 아이디어가 많지만 이를 가지고 해외 진출에 나서는 기업을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글로벌화 수준에 대해 ‘C-’라는 박한 점수를 준 이유다.
웨일즈는 “한국 기업들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빨리 해외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상당한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며 “앞으로 100년을 내다볼 때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화’는 어떤 나라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글로벌화를 거부하고 한발 물러서면 ‘블랙 스완’과 같은 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얘기다. 교역을 확대하면 전 세계 분쟁이나 전쟁의 여지를 없애는 효과도 있다고 믿고 있다.
웨일즈는 “일반적으로 교역 의존도가 높은 두 나라는 전쟁을 할 수 없지만 교역관계가 없다면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과거 유럽 대륙에서 세계 1차, 2차 대전이 발발했지만 오늘날 독일이 프랑스를 침범하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스스로를 삼성폰을 쓰고 현대차를 타는 등 한국 제품을 무척 좋아하는 마니아라고 소개했다. 한국에는 이렇게 대단한 기업들이 많지만, 기업가정신에 있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창업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대기업에 취직해 그럴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웨일즈는 “정보의 시대에는 혁신이 갈수록 더 중요해진다”며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은 갈수록 짧아지고 소비자들의 요구사항도 계속 변하기 때문에 더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창업에 나서는 이들에게는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조언했다. 예상치 못했던 이유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자질이 없는 기업가라거나 사람이 나쁘다거나 인간으로서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단지 운이 나빠서인 경우도 있으니 또다시 도전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웨일즈 자신도 음식주문 웹사이트, 인터넷 검색 포털, 인터넷 백과사전(누피디아) 등을 창업했다가 실패했지만, 그 경험이 오늘날 위키피디아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고 굳게 믿고 있다.
웨일즈는 “혁신을 원한다면 새로운 것, 시도하지 않았던 것, 입증되지 않은 것을 꾸준히 시도해야 한다”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면 그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도 함께 생각하는 기업인
늘 혁신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중시한다. 위키피디아가 매달 평균 5억명이 찾아오는 거대한 사이트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수익모델을 찾기보다 기부금만으로 운영하는 것을 고집하는 이유다.
웨일즈는 “위키피디아 목적 자체가 지구 상의 모든 이들에게 무료로 백과사전을 제공하는 자선단체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며 “광고와 같은 수익모델을 도입하면 광고시장이 큰 선진국이나 기업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인도나 아프리카 등 광고예산이 별로 없는 나라는 뒷전이 된다”고 설명했다.
웨일즈는 “원하는 곳에 10%를 기부할 수 있으니 통신사를 바꿔야겠다며 가입하는 이들이 많다”며 “최근 4개월 동안 영국에서 가입자가 두 배 이상 늘어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입소문을 통한 마케팅의 효용성에 대해 강한 확신도 드러냈다. 그는 “예전에는 뭔가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입소문이 퍼졌지만 요즘은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에 올린다”며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평균 314명의 친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콘텐츠나 아이템이 있는 회사에는 새로운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광고와 같은 탑다운 방식의 마케팅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스토리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은 훨씬 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관심도 높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분야는 바로 무인자동차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구글 본사를 방문할 때 운전자가 없는 무인자동차(Driverless car)를 시범 운행해본 이후 시쳇말로 꽂혔다고 고백했다.
웨일즈는 “사람들이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생각해보면 무인자동차는 상당히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출근이나 자녀를 등교시키는 풍경이 바뀌는 등 무인자동차는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Who is he?
지미 웨일즈 위키피디아 공동 창업자는 1966년 미국 앨라바마에서 태어나 오번대학교(Auburn University)와 앨라바마 주립대학에서 재무학으로 각각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수료 중에 취직하면서 대학원을 그만뒀고, 이후 시카고 선물옵션 회사에서 트레이더와 리서치 담당으로 일했다. 1995년 넷스케이프의 성공적인 기업공개(IPO)를 보고 인터넷 기업가로 변신을 꾀했다.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지만 식당을 섭외하지 못해 실패했고, 또 ‘세마리 원숭이’(3APES.COM)라는 검색 포털도 문을 닫았다. 두 명의 사업 파트너와 공동으로 만든 성인물 전용 웹사이트 보미스(Bomis)도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보미스가 자금을 지원한 누피디아(Nupedia) 프로젝트는 위키피디아의 시초가 됐다.
전문가들이 만드는 백과사전 누피디아가 성과를 내지 못하자 누구나 글을 올리고 편집할 수 있는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지금의 위키피디아를 만들게 됐다. 위키피디아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 브리태니커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온라인 백과사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웨일즈는 2006년 타임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