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뚝심으로 9·11, 사스 극복하고 보잉에 인정받았죠"

-설립부터 ‘위기’…20년 월급쟁이에서 하루아침에 사업가로
-9·11 테러·사스(SARS)…회사 존립의 갈림길에서 만난 ‘해외 파트너’
-"흐르는 물이 썩지 않듯이 도전하는 기업만이 성장한다”
  • 등록 2015-04-15 오전 6:00:00

    수정 2015-04-15 오전 6:00:00

[이데일리 임성영 기자]“창립 초기부터 위기였습니다. 직원들도 걱정됐는지 매일 같이 제 방으로 찾아왔죠. 당시 직원들은 사무실이 2층이라 뛰어내려도 소용없으니 어떻게든 이겨내 보자고 위로를 했습니다.”

김희원(사진) 아스트(067390) 대표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기회보다는 위기가 더 많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설립 부터 ‘위기’…20년 월급쟁이에서 하루아침에 사업가로

▲김희원 아스트 대표가 자체 생산한 항공기부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국내 항공 업계에서 20년 넘게 월급쟁이 생활을 하던 김희원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였다. 아스트를 창업하기 전까지는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을 통합해 설립된 한국항공우주(카이) 스트링거 생산을 책임지고 있었다.

카이는 설립 초기 국가로부터 부채를 탕감받는 조건으로 국내 항공산업의 장기적 발전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설계하는 과제를 받았다. 당시 카이 대표였던 임인택 전 사장은 카이가 국내 항공산업의 항공 시스템통합(System Intergrate)을 총괄하고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를 육성하는 구조로 한국 항공산업 밑그림을 그렸다.

항공부품 가운데 가장 난이도가 높은 스트링거는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전체 항공기 제작 스케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카이의 고객사인 보잉의 승인도 필요했다. 적임자로 김희원 대표가 거론됐고 김 대표는 얼떨결에 회사를 차려야 할 상황에 처했다. 자금 확보부터 공장 터 마련까지 직접 발로 뛰며 아스트를 설립했다. .

그는 “2001년 2월에 카이를 나와 그해 4월16일에 회사를 세웠는데 당시 직원도 없었다”면서 “카이에서 직원들을 불러내야 하는데 누가 미래가 보이지도 않는 신생회사에 오려고 했겠냐”며 웃었다.

창립 후 넉달이 지난 8월에서야 카이에서 퇴사한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9·11 테러·사스(SARS)…회사 존립의 갈림길에서 만난 ‘해외 파트너’

우여곡절 끝에 9월 초 회사다운 모습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숨돌릴 새도 주지 않고 더 큰 위기가 연달아 터졌다.

김 대표는 “수주받은 물량을 납기에 맞춰 공급할 수 있도록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숨을 돌리려는 찰나에 9·11 테러가 터졌고 그해 겨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스(SARS)까지 발발했다”며 “그야말로 사망선고를 받은 암환자나 다름 없는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비유했다.

9.11테러와 사스로 전세계 항공수요가 줄었고 항공기 생산량도 급감했다. 항공산업 제일 밑단에 있는 아스트의 타격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스트가 카이로부터 처음 수주 받은 스트링거(3500~4000개) 물량은 결국 1600개로 절반이상 줄었다.

그는 “사정이 어렵다 보니 직원들을 내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결론은 ‘정도(正道)가 아닌 길은 가지 말자’였고 직원 가족들까지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뛰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을 내보냈다면 회사 재무사정이 나아지고 책임감도 덜었겠지만 인력 부족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오기는 힘들었을 것이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오히려 무거운 책임감과 악화되는 회사 사정이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 하게 만들어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국내에서는 솟아날 구멍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김 대표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때마침 싱가포르 스타이스(STAIS) 사가 글로벌 배송업체 페덱스(Fedex) 납품을 위해 단종되는 757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케인덱 카고도어(Main Deck Cargo Door;MDCD, 화물을 들어가고 나가는 문) 및 주변 구조물을 생산하는 업체를 수소문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한번도 생산해본 적 없는 부품이었지만 그 길 밖에 살길이 없어 앞뒤 따지지 않고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결국 좋은 품질로 일정에 맞춰서 납품하고 있다는 평가 하나로 스타이스에서 우리를 선택했는데 그 때의 결정은 양사 모두에게 큰 모험이었다”고 말했다.

▲케인덱 카고도어(Main Deck Cargo Door;MDCD, 화물을 들어가고 나가는 문)
케인덱 카도어 생산업체로 선정된 이후에도 위기는 계속됐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MHI가 아스트의 생산설비로는 MDCD 생산을 할 수 없다며 기술 이전을 거부한 것. 스타이스와 MHI가 제대로 맞붙은 ‘아스트 대첩’이 시작됐다. 여러번의 협상에도 타결되지 않자 결국 보잉까지 나서 아스트 대첩 중재에 나섰다. 보잉 관계자가 한국에 들어와 양쪽의 설명을 들은 후 아스트 생산시설을 살펴봤다. 보잉이 ‘OK’판정을 내리면서 아스트 대첩에서 스타이스가 대승을 거두게 됐다.

김 대표는 “사실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들어 보잉에서 실사에 나왔을 때 긴장감이 상당했다”며 “이후 셀 수 없는 밤을 지새우면서 MDCD 생산에 박차를 가했고 1년뒤 멋지게 성공하면서 스타이스와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고 강조했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듯이 도전하는 기업만이 성장한다”

▲섹션48 생산 과정…엔지니어들의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김 대표는 아스트 설립 이후 가장 감동스러운 순간으로 섹션48 핏업(Fit-up) 테스트를 통과했을 때를 꼽았다.

그는 “섹션48 안에 들어가는 벌크헤드 부품들을 공급하는 와중에 스피리트 사로부터 섹션48 전체를 공급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며 “사실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을 많이 했지만 나 스스로 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더 큰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어 결국 도전에 나섰다”고 말했다.

섹션48은 기체의 수평과 좌우 방향을 잡아주는 옆꼬리와 뒷꼬리가 붙는 곳으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부분에 속한다. 항공기 동체는 각 부분들을 끼워 맞춰 하나로 만들어지는데 조그만 오차가 있어도 딱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실패를 경험했던 분야다.

아스트는 섹션48 개발에는 1년여 시간이 걸렸다. 온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 회의와 수정, 연구를 수만번 반복한 끝에 섹션48이 완성됐고, 테스트를 받기 위해 스피리트 본사로 떠났다.

그는 “먼저 Fit-up테스트에 나섰던 중국업체가 실패한 이후 우리가 시도했는데 우리가 만든 섹션48이 완벽하게 들어 맞았던 그 순간은 정말 감동스러웠다”며 “MDCD 개발 성공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아스트가 고난이도의 기술을 보유한 항공부품업체로 한단계 도약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희원 아스트 대표는..

1955년 경상남도 대구에서 출생해 영남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1978년 삼성항공우주산업에 입사했다. 1999년 한국항공우주(KAI)가 설립되면서 3년간 이사직을 역임했고, 2001년 아스트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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