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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에세이가 쓰기 쉽다. 에세이는 나를 보여주면 되지만 소설은 작가가 드러나면 안 된다.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보면 소설은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건 잘 써놨지만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소설쓰기가 어렵다는 얘기다.”(김훈)
“마찬가지다. 소설 쓰는 게 어려워서 에세이를 썼다. 겪은 일을 옮겨 쓰는 건 어렵지 않다. 반면 소설은 겪지 않는 걸 쓰는 거니까 어려울 수밖에 없다.”(김연수)
지난 24일 오후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김훈과 김연수, 요즘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두 명의 소설가가 에세이작가로 마주 앉아 문태준 시인의 사회로 약 2시간 동안 전업 소설가의 이른바 ‘영업 고충’을 털어놨다. 또한 세월호 사건 이후 작가로서 느꼈던 괴로움도 토로했다. 나아가 글쓰기 지향점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일산 주민으로서 이미 친분이 두터운 두 작가는 서로 근황부터 이야기했다. 서해안 선감도의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해 있는 김훈은 “3시간만 책상에 앉아 쓰는 시늉을 하고 나가서 논다”며 “개펄에서 해지는 거 보고, 날아가는 새를 보며 철새들의 대형에 대해 궁금해 한다”고 말했다. 김연수는 “최근 책을 냈으니 요즘은 주로 놀고 있다”며 “오늘 지나고 나면 무엇을 하긴 해야 할 텐데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다. 내년 1월부터 뭘 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한량처럼 사는 일상 뒤에는 본업에 대한 압박이 도사리고 있었다. 김훈은 “쓴 책을 다시 펼쳐보지 않는 편이다”라며 “재출간을 위해 쓴 책을 다시 보니 너무 지겹고 꿈에 볼까 두렵다. 내가 이렇게밖에 못 쓰나 자책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무진장 써야 한다’가 소설쓰기의 비밀”이라며 “그렇지 않고는 단어의 겹을 뚫고 나갈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두 작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팽목항에 가서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을 만난 김훈은 “팽목에 다녀와 너무 답답해서 선박조정술이란 책을 사서 봤다”며 “미치광이가 아니면 과적은 할 수 없다. 과적은 물리법칙을 위반한 것이고 물리법칙을 위반하면 다 죽는 거다. 결국 돈 때문이다.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개탄했다. 김연수는 “처음에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슬픔이었다”며 “하지만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면 찬반양론을 넘어서 남의 슬픔이 지겹다 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라고 탄식했다.
한편 이날 북토크콘서트는 두 작가의 인기를 반영하듯 300여석이 꽉 들어찼다. 부산과 김천, 대전 등 지방에서 올라온 독자도 있었고 10대는 물론 머리 희끗한 중년층도 보였다. KTX를 타고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20대 남성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16세 소녀는 “학교를 자퇴하고 문예창작학과에 가기 위해 일주일에 콩트를 네 편씩 쓰고 있는데 무척 힘들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김훈은 20대 남성에게 “일단 밥벌이를 한 뒤 건전하고 꿈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그외에 현실적인 조언은 없다”며 미안해 했다. 김연수는 1십대 소녀에게 “일을 너무 많이 하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거”라며 “일주일에 한 편으로 줄이는 게 좋겠다”고 현실적인 처방을 내준 뒤 “어떤 문이 열릴지는 알 수 없다. 난 열여섯 살 때 천문학자가 꿈이었지만 지금은 소설가로 살고 있다”고 덧붙여 박수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