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강종구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 대한 규제가 일부 완화됐다. 시장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꼬였던 거래도 정상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규제로 인한 직접적 피해의 당사자였던 국내 은행들은 고마움의 인사를 정부가 아닌 한국은행에 했다. 한 시장참가자는 "한은이 모처럼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처음부터 꼬였던 외환시장 규제
한달여간에 걸친 홍역의 시작은 지난달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화 절상(환율 하락)을 노린 투기세력들을 몰아내야겠다고 결심한 정부는 아무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초강력 대책을 내놓았다.
역외 NDF시장에서 국내 금융기관들이 매입초과포지션을 14일 현재보다 10% 이상 더 이상 쌓지 못하도록 제한 한 것이다. 주가지수 선물시장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지수선물을 14일 기준으로 100계약 순매수하고 있는 경다면 앞으로 10계약 이상을 더 사지 말라는 것. 외국인들이 투기적으로 팔아대는 걸 사주면 그건 투기세력의 환율 하락 조장에 동참하는 것이니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깜짝 놀란 시장이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따져보며 눈치를 보고 있는 사이 정부는 17일 또 한번 시장을 충격으로 몰고 갔다. NDF매입초과포지션 뿐 아니라 매도초과포지션도 제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16일 현재 매도초과포지션인 국내 금융기관들의 경우에는 앞으로 90% 이상으로 매도초과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또다시 지수선물을 비유한다면 100계약 순매도인 경우에는 순매도 규모를 90계약 아래로 떨어뜨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달러선물환을 사겠다고 할 경우에는 가급적 응해주고 기왕에 매도한 것을 되사지 말라는 뜻이다.
정부가 왜 돌연 매도초과 규제를 들고 나왔을까. 그 사연은 이렇다. 투기세력의 매도를 받아주느라고 국내 금융기관들은 모두 매입초과이겠거니 생각하고 매입초과 규제를 발표했는데, 조치 발표후 실제로 알아보니 실제로는 매입초과가 거의 없고 대부분 금융기관들이 매도초과 상태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정부는 제대로 시장조사도 해 보지 않고 조치부터 취하고 본 것이다.
◇계속된 비난에 정부는 코너에 몰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를 비난하고 나섰다. 무엇보다도 매도초과에 대한 규제로 "의도와는 달리 환율을 폭락시킬 수 있다"는 역발상이 나왔고 국내 금융기관들은 "우리보고 죽으란 소리냐"고 비명을 질렀다.
내용은 이렇다. 매도초과인 국내 은행들은 NDF 시장에서 항상 매도초과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계약이 만기를 맞아 풀릴 때마다 외국인(정확하게는 역외)을 찾아 다니며 달러선물환을 팔테니 사달라고 사정해야 한다.
아쉬운 건 국내 은행이니 매달릴 수 밖에 없고 느긋한 역외의 상대방은 가능한한 싸게 살려고 들 것이다. 달러값이 싸진다는 것은 NDF시장에서 형성되는 환율이 하락함을 뜻한다. 결국 환율 하락을 막으려던 규제로 인해 환율 하락이 초래되고 달러를 싸게 팔수 밖에 없는 국내 은행들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우려와 달리 환율 급락 사태는 없었다. 그러나 시장의 꼬여 버렸다. 수요과 공급이 조화를 이루며 균형가격을 찾아내는 것이 시장의 역할인데 NDF시장과 스왑시장 모두 거래가 감소했고 역내 환율과 역외 환율에 차이가 발생했다. 같은 상품에 2개의 가격이 존재하는 불일치는 필연적으로 아무런 위험없이 차익을 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시장 "한은, 모처럼 제 역할" 환영
한국은행은 처음 재정경제부가 NDF규제를 궁리할 때부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재경부와 함게 외환시장을 관리 및 감독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손발이 맞지 않았다.
재경부가 "시스템을 통해 투기를 막겠다"고 했을 때 한은은 "재경부가 모든 걸 알아서 하니 그쪽에다 물어보라. 우리는 모른다"고 했다. 재경부가 "한은과 모든 걸 협의하고 있다"고 하자 "협의와 합의는 다르다"고 대꾸했다.
지난 한달여간 한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할 때 한은의 입장은 환율은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규제로 모든 걸 막아버리면 곤란하다는 것었다. 그러나 한은은 적극적으로 규제를 막지 못했다. 규제는 재경부의 그림대로 발표됐고 눈에 보이는 반발은 시장에서 나왔다.
국내 은행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재경부도 한발 물러섰다. 규제는 완화하기로 결정됐고 그 역할은 한은에 맡겨졌다. 규제완화를 하는 방안이 중간에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어찌됐든 시장이 원했지만 기대는 하지 못했던 쪽으로 결론이 났다. 매도초과분에 대한 제한비율을 60%, 30% 0%로 점차적으로 낮춰 국내은행도 살리고 시장도 어느정도 정상화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
규제완화가 결정된 후 한은의 한 관계자는 "밥을 한 그릇 이상 먹지 말라고 얘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두 그릇을 꼭 먹으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현재 한은의 자산은 거의 대부분이 16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 즉 국외자산이다. 반면 부채는 국외부채가 거의 없고 화폐발행액이나 통안증권 발행잔액이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외화자산에 대한 엄청난 매입초과포지션인 셈이다.
어쩌면 엄청난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쌓아놓고 있는 한은의 동병상련이 발동했는지도 모르겠다. NDF시장에서 매도초과인 은행들이나 달러 현물을 안고 있는 한은이나 환리스크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NDF 매도초과인 은행들이 규제로 인해 대형 손실을 입을 위험에 처했었다. 한은은 정부와 한은 자신의 시장개입으로 손실을 입는다. 통안채가 늘어나 이자부담이 갈수록 늘고 있고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외환보유액을 원화로 환산한 손실도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