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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1월 서울 성북구 한 복싱클럽 수강생 B씨는 회원등록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관장 C씨(33)에게 “어른에게 눈 그렇게 뜨고 쳐다보지 말라”라고 질책을 들었다.
이후 “눈을 어떻게 떴냐”라며 B씨가 항의하자 C씨는 B씨의 몸을 밀거나 넘어뜨리려 하는 등 폭행했다.
이를 지켜보던 A씨는 피해자 B씨가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휴대용 녹음기를 꺼내어 움켜쥐자, 이를 위험한 물건으로 착각해 빼앗기 위해 B씨의 왼손을 잡아 쥐고 있는 주먹을 강제로 펴게 했다.
피해자 B씨는 약 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좌 제4수지 중위지골 골절 판정을 받았고, A씨는 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손을 펴라는 피고인의 요구를 거부하는 피해자로부터 강제로라도 흉기를 빼앗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손을 강제로 펼치는 방법 외에 다른 수단이 없었다고 보인다”며 “피고인이 위법성조각사유(정당방위)의 전제사실이 있는 것으로 오인한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손에 있는 물건을 흉기로 오인했더라도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며 벌금 200만원을 명했다. 또 검사 측은 2심에서 공소사실 가운데 “위험한 물건으로 착각해 빼앗기 위해”를 삭제하는 것으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허가했다.
2심 재판부는 “관장과 청소년인 피해자의 신체적 차이, 폭행 상황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손에 있는 물건을 이용해 위해를 가할 가능성은 낮아보이고 그 물건이 흉기라고 볼만한 정황도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오인에 ‘정당한 이유’를 부정한 원심 판단을 수긍할 수 없다며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공소사실 기재 당시 관장과 피해자는 외형상 신체적 차이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또 둘의 몸싸움은 일시적·우발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 피해자가 항의 내지 보복의 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계획적·의도적으로 다시 찾아오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 입장에서는 둘 사이의 몸싸움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특정한 물건을 움켜쥔 채 꺼내는 것을 목격하고서, 이를 피해자가 상대방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하려는 것으로 충분히 오인할 만한 객관적인 정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대법원은 “실제로 피해자가 가지고 있었던 ‘휴대용 녹음기’와 피고인이 착각했다고 주장하는 ‘호신용 작은 칼’은 크기·길이 등 외형상 큰 차이가 없어 이를 쥔 상태의 주먹이나 손 모양만으로는 양자를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사건 당시 피고인의 행위는 적어도 주관적으로는 그 정당성에 대한 인식 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