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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장이 언급한 ‘검찰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지난해 5월 민주당이 통과시킨 ‘검찰 수사권 완전박탈(검수완박)’ 법안을 가리킨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의 권한을 대거 떼어내 경찰에 넘겨준 것으로 모자라 또다시 무리한 검찰 개혁으로 혼란만 가중시켰다며 불만을 표출한 것입니다.
반년도 지난 일을 굳이 새해에 끄집어낸 것은 ‘뒤끝작렬’처럼 보이기는 하나, 그만큼 검수완박이 검사들에게 적잖은 충격과 공포를 안겨줬던 사안임을 짐작케 합니다.
野 권력형비리 의혹 ‘줄줄이’…검찰개혁 작업 ‘급제동’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들어 야권의 비리 의혹이 잇따라 터지면서 ‘검찰 권한 축소’ 작업은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장동 개발 비리’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강하게 받는 중이고,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에도 연루돼 조만간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입니다.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실체를 숨긴 혐의로 철창에 들어갔고, 같은 혐의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은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게 됐습니다.
이처럼 검찰이 야권 비리의혹을 고구마처럼 줄줄이 캐내는 동안엔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자고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자기편의 비리를 땅에 묻어버리려는 불순한 의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경찰에 붙잡힌 도둑의 가족이 ‘경찰관들은 썩었다, 경찰을 개혁하자’고 주장하면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당도 이런 민감한 분위기를 의식한 듯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는 검찰 권한 축소 논의를 피했습니다. 검수완박의 최종단계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기소청 전환,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청 확대 논의도 멸종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대신 민주당은 검찰이 앙심을 품고 민주당 인사들만 마구 때리는 편파적인 수사를 벌인다고 비판합니다. 검찰은 ‘범죄 혐의가 포착됐으니 그저 할 일을 할 뿐’이라는 방어논리를 펼치고 있지만, 민주당을 견제해 권한을 지켜내겠다는 셈법도 깔렸음을 부정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민주당으로서는 검찰이 더욱 얄미운 이유입니다.
어쨌든 검찰과 민주당 양측은 현 사정정국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검찰이 수사와 재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권력형비리 척결’ 공로를 인정받아 당분간 권한은 공고하게 유지되고,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극진한 공치사를 받을 전망입니다. 반대로 민주당 인사들이 억울한 혐의를 벗고 검찰이 잘못된 수사를 밀어붙였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검수완박 시즌2’가 막을 올리게 됩니다.
그동안 검찰이 들춰낸 비리 의혹은 의혹일 뿐, 진짜 승패는 결국 법원의 판결에 달려 있습니다. 검찰이 비리 증거를 낱낱이 밝히고 피의자를 법정에 세웠더라도 ‘무죄추정의 원칙’상 그를 죄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압수수색, 소환조사, 구속영장, 기소 카드로 정국을 뒤흔들고 검수완박 위기를 벗어난 검찰이 이제는 법정에서 국민과 재판장을 설득해 검찰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