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연간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한 기관투자자의 말이다. 누군가의 위기가 나에게 기회가 되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 과거 위기때마다 열렸던 NPL 시장이 최근 경기 침체를 타고 다시금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이다. ‘큰손’인 기관투자자들도 저마다 새해 투자 대상에 NPL를 올려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새해 시장 환경에 따라 저금리 시기 몸값이 치솟았던 우량 부동산을 ‘염가’에 건질 기회도 심심치 않게 노려볼 수 있고,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부실채권을 사뒀다가 출자 전환해 수익을 낼 수도 있어서다.
“장 열린다, 자금 챙겨”…실탄 장전 나서는 투자자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유진자산운용은 운용 중인 5092억 규모 NPL 투자펀드 ‘유진에스에스앤디오퍼튜니티’ 잔액의 30% 가량 투자를 단행했다. NPL 중에서도 부동산 담보가 있는 채권에 한해 투자가 진행돼 시장 평균을 상회하는 수익률이 예상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반기에 조성된 해당 펀드는 우정사업본부와 새마을금고중앙회 등 굵직한 기관투자자들이 투자자(LP)로 참여해 자금을 댔다.
투자시장 큰손들 중에서도 NPL 투자를 염두에 두는 곳들이 속속 늘고 있다. 국민연금과 농심캐피탈은 NPL을 내년도 투자 후보군에 놓고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다. 이밖에도 일부 공제조합들이 NPL 관련 투자펀드 결성을 위해 자금을 맡길 운용사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관 관계자는 “NPL쪽이 나쁘지 않은 듯하다. 어차피 크레딧 문제가 곧 불거질 거 같고, 내년 최대 이슈는 신용경색 문제일 듯하다”며 “오퍼튜니스틱 전략으로 정확하게 밸류에이션 나오는 건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확실한 LTV만 어느정도 인정되면, 고수익 대출펀드는 해볼 만한 펀드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증권·운용업계에서도 기관들의 관심사에 맞춰 관련 영업 제안 준비에 나서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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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L 투자를 검토하는 기관들이 주로 염두에 두는 대상은 우량 부동산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이 줄줄이 터져나올 경우, 자금 연체 문제만으로 NPL로 넘어올 양호한 자산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수년간 상업용 부동산 몸값이 고공행진을 해온 까닭에 우량한 물건을 담았더라도 큰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부실채권 매입을 통해 할인된 가격으로 투자에 나서는 경우 부실 정리 후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
한 공제회 고위 관계자는 “내년에 못 버티고 나올 물류센터들이 꽤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물류센터 외에도 올해까지 너무 올랐는데 거품이 빠지지 않아 담지 못했던 건들을 담아와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제회 고위 관계자도 “그동안 과열됐던 부동산 가격이 빠지기 시작했고, 감정가액 대비해서 낙찰가율이 꽤 떨어져 있다”며 “스프레드가 상당히 벌어져 갭만큼의 프리미엄을 챙기기 시작할 시기”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연초에 펀드를 조성해서 NPL로 넘어오는 건들을 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