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6·25 전쟁통’...암흑과 공포·절망의 시기를 바로 떠오르게 만드는 이들 단어를 원로 문학평론가 K 선생의 인터뷰 기사에서 최근 접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풍경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은 대목에서였다. 기사를 일부 그대로 옮기자면 이랬다. “그렇게 오만하고 자기 성찰이 없는 유형을 별로 보지 못했다. 일제시대나 6.25 전쟁통에서도 그런 오만은 없었다. 조국만이 아니다. 대법원장은 자기가 거짓말했다고 고백하면서도 꿈쩍을 하지 않는다..... 자기성찰이나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지식인이나 사회 활동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인데...”
생존을 위한 극한 기술만이 판친 난리통에서도 보기 힘들었을 오만의 행태가 7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땅에서 저질러지고 있음을 개탄하는 심정에서 꺼낸 말이었을까. 선생은 조국 전 법무장관과 김명수 대법원장을 ‘콕 ’찍어 “자기성찰 없이 뻔뻔하다”고 질타했다.
자녀 입시비리 의혹 등에 연루돼 기소된 조 전 장관과 거짓말 논란 등으로 야당으로부터 ‘비리백서’ 선물까지 받은 김 대법원장의 경우는 알려진 이야기가 너무 많아 다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 초(超)엘리트 집단의 몰(沒)염치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어김없이 까발려지는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세금 및 과태료 체납, 음주운전 등과 관련된 물의나 의혹은 하도 보고 들어 이젠 당연한 병리 현상으로 비칠 지경까지 돼 버렸다. 보통의 서민들이면 꼼짝없이 처벌이나 불이익의 대상이 될 일들이 엘리트 집단에는 ‘성장통’ 정도로 가벼워진 셈이니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어느 선진 사회에 또 있을까.
염치를 모르거나 잊어버리는 일을 경계하라는 것은 동서고금 성현군자들의 가르침 중 거의 으뜸일 것이다. ‘몰염치’,‘파렴치’에서 교만과 탐욕이 생겨나고 이는 결국 자신은 물론 나랏일까지 망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권위와 존경, 신뢰의 최정점에 있어야 마땅할 대법원장이 “삼치(염치· 눈치·수치심)도 없다”는 모욕적 언사를 듣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몰염치가 큰 원인이다. 배임, 횡령 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도 거액 수당을 꼬박 받아 챙긴 이상직 국회의원(무소속·전 더불어민주당)도 얼굴 두껍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나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도 최고 권위의 국책연구기관장 자리를 꿰어찬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자리 욕심도 ‘선비’ 체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지도층 인사들의 민낯을 보게 된 국민이 불쌍할 정도다.
다산 정약용은 공직자가 의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고,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면 자신의 허물을 줄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중국 명나라 말의 사상가 고염무(1613~1682)는 ‘염치론’에서 “학문하기 전 먼저 사람이 돼라”며 ‘예· 의· 염 ·치’의 네 가지 덕목을 강조했다. 개인과 나라의 흥망이 모두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일깨운 것이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세상은 온통 정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최적임자임을 알리려는 립서비스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그러나 건곤일척의 이 싸움판에서 우리가 반듯한 지도자를 만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엘리트 집단의 반칙과 불공정으로 망가진 오늘의 한국에 한 가지 덕목이라도 제대로 갖춘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 헛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다산이 경세유표 서문에서 통렬히 비판한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곳이 없는 나라”를 바로 세울 명약은 지도층부터 탐욕을 버리고 자기 반성과 도덕성 회복에 나서는 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