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의 창과 방패]한일관계 아직 불씨는 살아있다

  • 등록 2021-06-10 오전 6:37:46

    수정 2021-06-10 오전 6:37:46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 관계는 좋았던 때보다 나쁜 때가 훨씬 많았으니 새삼스런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9일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관계는 ‘최악’이며, 향후 전망도 잿빛이다.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은 89.6%, 일본인은 81%가 양국관계를 ‘나쁘다’고 인식했다. 수치로만 보자면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지난해는 일본 수출규제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이 부정적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독도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양국관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신뢰도와 호감도로 이어졌다. 상대를 ‘신뢰할 수 없다’ 한국은 79.5%, 일본 69%에 달했다. ‘친밀감을 느낀다’는 응답 역시 한국 20.2%, 일본 38%에 그쳤다. 반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한국 76.2%, 일본 57%)는 2~3배 이상 높았다.

최근에는 더 꼬였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표기하면서 또 불을 질렀다. 한국은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하자며 폭발 직전이다. 일본이 틈만 나면 독도를 자신들 영토라고 우기는 이유는 빤하다. 분쟁지역으로 몰고 가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겠다는 속셈이다. 꼼수에 말려들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치미는 울화를 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양국이 계속 대립할 경우 외교단절과 파국은 불가피하다.

한일관계가 살얼음판인 상황에서 뜻깊은 전시가 열렸다. 일본 국민작가로 사랑받는 <후지시로 세이지> 작품전이다. ‘빛과 그림자 판타지 전(展)’이란 부제를 단 전시회는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무엇보다 꽁꽁 언 양국 사이에 훈풍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빛과 그림자는 양국이 처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암시한다. 한쪽은 빛, 다른 한쪽은 그림자로서 공존한다. 빛을 떠난 그림자가 있을 수 없듯, 그림자 없는 빛은 상상할 수 없다.

지난 1년 동안 현해탄에는 찬바람만 감돌았다. 문화예술, 해외여행, 기업활동, 유학생까지 모든 교류가 끊겼다. <후지시로 세이지 전> 또한 1년 연기 끝에 마련됐다. 동화적 감성을 지닌 작품은 평화, 사랑, 공생 메시지를 전한다. 올해 98세인 작가는 생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하루 7시간 이상 작품 준비에 매달렸다고 한다.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강혜숙 대표는 “한일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로 그동안 마음고생을 토로했다.

이런 까닭에 9일 개막식에는 상징적인 인사들이 발걸음 했다. 주한 아이보시 코이치(相星孝一) 일본대사, 김진표 한일의원연맹회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응웬 부뚱 베트남 대사, 김덕룡 민추협 이사장, 도종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양보경 성신여대 총장. 아이보시 일본대사는 단연 눈길을 끌었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문화교류를 통해 양국 간 우호협력 증진을 기원한다”고 축사해 큰 박수를 받았다.

최근 한일관계를 감안할 때 편치 않은 자리였을 게 분명했다. <후지시로 세이지 전>이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헤아린 발걸음으로 이해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과 일본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다. 아무리 미워도 지울 수 없다. 일본 고대문명은 한반도로부터 전해졌다. 일본 역사서 ‘고사서기’조차 백제 도래인들이 일본문명을 일구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근대화 이후에는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앞선 기술을 받아들였다.

이 와중에 아픈 역사가 있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36년 식민지배까지 일본은 끊임없이 한반도를 침탈했다. 그런데도 속 시원하게 과거사 문제를 속죄하기보다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좁쌀영감 같은 태도에 우리 국민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감정적, 소모적인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다. 순망치한은 서로를 긴밀하게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일본에게 변화를 요구한다면, 우리도 그래야 당연하다.

다행히 불씨는 살아 있다. 앞선 공동 여론조사 결과 양국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한국 28.7%, 일본 14%였다. 또 일본은 한국 요리(68%)와 영화·드라마(40%), 음악(40%), 패션(27%)에, 한국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26.4%), 요리(23.7%)에 관심을 보였다. 문화예술 교류를 통해 얼마든지 불씨를 살려 나갈 여지가 있다. 오는 주말에는 예술의 전당을 찾아 ‘평화, 사랑, 공생’ 메시지에 귀 기울여보길 권한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시선집중 ♡.♡
  • 몸짱 싼타와 함께 ♡~
  • 노천탕 즐기는 '이 녀석'
  • 대왕고래 시추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