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지류인 왕숙천의 동편으로 펼쳐진 나지막한 평야지대를 가르는 곳곳의 도로는 온통 ‘LH 해체하라’, ‘왕숙지구 원주민들의 목을 쳐라’, ‘왕숙에 양아치 LH 직원, 한 발도 들이지 말라’ 등 LH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형형색색 현수막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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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이 커지면서 이곳 주민들은 LH의 ‘L’자만 보여도 치를 떨 정도다.
실제 기자가 왕숙지구로 지정된 진접읍 내곡리 현장을 취재할 당시 한국토지정보공사 관계자들이 왕숙천 인근 측량을 진행하다 ‘3기신도시 백지화 전국연합회’의 왕숙·진접대책위 임원들이 ‘LH해체하라’라고 쓴 현수막을 화물차에 달고 달려오는 모습을 보자 “우리 LH에서 나온거 아닙니다”라고 질문도 받기 전, 먼저 나서서 해명하는 상황도 있었다.
왕숙지구 주민들의 LH에 대한 반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차를 몰던 박남길 왕숙·진접대책위 임원은 지난 11일 정부합동조사단이 발표한 국토교통부와 LH 직원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발표를 두고 “어떻게 하면 남에 눈에 잘 띄지 않고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LH 직원들”이라며 “만약 내부 개발정보를 이용해 3기신도시 예정지에 땅을 사들였다면 찾아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는 곳 마다 LH를 ‘땅투기 꾼’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가득 차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오랜만에 학교에 등교하던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를 엿들어보니 LH가 뭔지는 몰라도 ‘땅투기꾼=LH’라는 개념은 이해하고 있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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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남양주 지역 최대 시민단체 중 하나인 다산신도시 총연합회는 최근 LH가 99% 지분을 갖고 진행하는 왕숙지구사업에 경기주택도시공사가 참여해 LH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이번 땅투기 논란으로 3기신도시 사업의 LH의 역할이 감소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조사한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고양시의 창릉신도시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3기신도시 사업이, 수십년 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정당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원주민들 보다는 투자 목적으로 땅을 싹쓸이하다 시피 한 외지인들의 돈잔치로 전락했다는 소외감 때문이다.
전성원 고양시 창릉동주민자치회장은 “창릉신도시 조성 계획이 발표되기 약 6개월여 전부터 이 지역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선 알게 모르게 정부의 대규모 택지개발 계획에 창릉동 일대가 포함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구체적인 도면까지 돌았다”며 “그때 도면은 2019년 5월 발표한 창릉신도시 계획과 거의 같았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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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석 ‘3기신도시 백지화 전국연합회’의 왕숙·진접대책위원장은 “‘땅 사뒀다가 개발되면 돈 벌 수 있다’는 분위기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이번 LH 사태를 낳은 것 아니겠냐”며 “부동산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3기신도시 등 8개 지구에서의 국토교통부와 LH 전 직원 토지거래를 조사한 결과 총 20명의 투기 의심 사례를 확인했으며 고양 창릉지구와 남양주 왕숙지구에선 각각 2명과 1명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