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 97. 몇 시간이면 영국에 왔는데…EU 신선제품 공급 흔들리나?

  • 등록 2018-11-01 오전 6:00:00

    수정 2018-11-01 오전 6:00:00

영국 런던 포토벨로 마켓에 진열된 과일과 야채들(사진=이민정 통신원)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영국 슈퍼마켓 식품 구매 담당자가 오전에 네덜란드 식료품 도매업자에게 야채를 주문합니다. 야채를 실은 트럭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로 향합니다. 영국행 큰 선박에 오른 트럭은 실린 물품 등에 대해 서류 검사 등을 받습니다. 아직 영국이 유럽 단일시장 내 있기 때문에 검사는 간단합니다. 물품 계약서 정도만 보여주면 되죠. 이같은 검사에는 약 1분30초 정도 걸릴 뿐입니다. 영국 도버 항구에 내린 이 트럭은 주문한 슈퍼마켓의 물류창고가 있는 지역으로 향합니다. 아침 일찍 네덜란드에서 출발한 야채는 늦은 오후쯤이면 영국 슈퍼마켓에 진열됩니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하루에 수천 대의 신선제품을 실은 트럭이 영국으로 들어옵니다. 영국은 국내 소비되는 식료품의 40%를 수입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야채, 과일, 신선제품 등을 포함해 수입의 4분의 3 정도를 유럽연합 회원국들로부터 공급받고 있고 있습니다. 해당 국가에서 출발해 몇 시간 내에 영국 슈퍼마켓에 진열되는 아주 촘촘하고 효율적인 유통시스템을 갖췄죠.

내년 3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고 EU 단일 시장을 나가게 되면 영국으로 들어오는 물건에 대한 세관 검사 등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영국으로 들어오는 EU 농산물, 영국에서 EU로 수출되는 농산물은 앞으로 생산지 등록, 수출 신고, 출입국 신고 등 단일시장에서는 간소화됐었던 모든 복잡한 수출입 절차를 수행해야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동 시간 단축이 비용 절감 및 신선도와 연결되는 신선식품의 경우 트럭 당 5분씩만 세관 검사를 받게 돼도 이를 위해 대기하는 트럭 줄이 항구에 쭉 늘어서게 되죠. 기다리는 시간의 기회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 식품의 신선도도 떨어지게 됩니다.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가 있는 로테르담 등이 있는 물류 허브이자 무역 중심 국가인 네덜란드는 EU 국가 가운데서도 브렉시트에 가장 타격을 크게 받는 국가 중 하나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영국이 EU를 탈퇴한 이후에도 EU와 자유무역을 하는 것으로 협상이 가닥을 잡는 최선의 시나리오 상황에서도 네덜란드는 브렉시트 여파로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의 0.9%에 감소가 예상된다고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은 전망합니다.

네덜란드 의회의 권고에 따라 네덜란드 정부는 브렉시트를 대비해 930여명의 세관 직원과 150여명의 농축산물 검사 직원 등을 추가로 뽑는 것을 추진 중입니다. 국민들의 복지 등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브렉시트 비용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중소기업들이 향후 깐깐해질 가능성이 큰 세관 신고에 대해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도 시키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항구 등지에서 세관검사로 신선제품 등 식료품 운송이 지연되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중소기업들이 파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영국 조달물류협회(CIPS)가 1300명이 넘는 기업 물류체인 관리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브렉시트 이후 유럽 지역에 물건을 실어나르는 물류업체들이 국경을 넘나들 때 서류 준비와 국경에서의 세관검사 등으로 시간이 10분에서 최대 30분만 지연돼도 그 비용 때문에 10개 영국 기업들 가운데 1개 기업 꼴로 파산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와 별개로 임페리얼칼리지 런던의 연구원들은 세관검사에 2분만 추가적으로 더 들어가도 항구에 대기하는 트럭 줄이 지금보다 3배 넘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한 식료품업계 고위인사는 영국 가디언신문에 “항구 문제는 심각하다”며 “영국은 식품 부문에서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데 항구에서 세관검사 등으로 시간비용이 발생하면 수출업자 뿐 아니라 수입업자들도 곤란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일부 식품 유통업자나 제조업자들은 추가적으로 식품을 비축하고는 있지만 우유나 야채 등 유통기한이 짧은 제품이나 식재료는 비축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영국이 유럽연합과 상호 호혜적인 무역협정을 맺지 못하고 유럽연합을 탈퇴하게 되면 영국 식품 및 음료 산업이 관세 등 추가 비용 등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고 이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영국 은행 바클레이스는 EU로부터 들여오는 식료품에 대해 평균 27%의 수입관세가 매겨지면 영국 소매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 등에 93억파운드가 들어가게 되고 이는 곧 식료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이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처럼 식료품 공급 차질에 대해 소비자와 업계의 우려가 커지자 영국 정부는 얼마 전 브렉시트 이후 식료품 공급 등을 관리할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장관으로 임명된 데이비드 러틀리는 영국 슈퍼마켓 체인 ‘아스다’와 미국 음료 제조사 ‘펩시코’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브렉시트로 식료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러틀리 장관이 안정적인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브렉시트 이후의 식품 대란과 관련한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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