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기운은 완연하다. 경비병들의 시야가 가려지지 않도록 군데군데 쳐낸 나뭇가지에는 새움을 돋아내려는 작은 몽우리들의 용틀임이 한창이다. 웃자란 봄풀들은 벌써 꽃씨 주머니를 터뜨리기 직전이다. 철책선 지역에도 자연의 섭리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법이런가. 이미 서울과 평창을 거쳐 평양에 이르기까지 새봄의 전령사가 두루 스쳐간 마당이다. 계절이 전해주는 선물보다 민족 간에 모처럼 오가는 훈훈한 감정이 더 벅차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제 2주일이 지나면 이곳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열린다. 두 사람의 회동이 한반도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지켜보는 마음 또한 초조하고도 간절하다. 더욱이 북한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남측 관할지역에 내딛는 발걸음이다. 아마 회담이 열릴 때쯤이면 주변 숲속에 활짝 피어난 꽃봉오리들까지 남북정상회담을 함께 축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지역으로 직접 걸어 내려오는 장면을 떠올린다면 이런 준비 절차들은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물론 아직 최종 결정되지는 않았다고 해도 북측에서도 극적인 효과를 노려 이런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을 법하다. 북측 통일각 앞에서 평화의집까지 대략 200m 남짓 걸어오는 동안의 모든 모습이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는 상황을 김 위원장이라고 마다지는 않을 것 같다. 올해로 집권 6년을 맞은 입장에서도 최대 스포트라이트가 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사실도 판문점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다. 북측은 회담 장소로 평양을 내세우는 반면 미국은 몽골 울란바토르롤 주장하고 있다지만 끝내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시 판문점으로 눈길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판문점에 봄이 찾아오고 있건만 온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남측의 대성동 마을과 북측 기정동 마을이 지척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교류가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과 비슷하다. 판문점 견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하늘은 미세먼지로 뿌옇게 흐려 있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