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영화관 장애인석, 일반인 예약받고 "빈자리 없어요"

일반인, 장애인석 발권 가능·확인절차 허술
장애인석·보조인력 배치 등 규정 위반해도 처벌없어
  • 등록 2016-02-28 오전 7:00:00

    수정 2016-02-28 오전 7:00:00

설 연휴 기간인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멀티플렉스 CGV 용산역점. 장애인전용석 표를 구입했지만 영화관 직원의 별다른 신원 확인 절차 없이 상영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이데일리 이승현 유태환 기자] 지체장애인 A씨는 주말에 서울 강남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A씨가 보려는 영화 상영관의 장애인전용석까지 일반인들이 모두 예매한 탓에 좌석이 없었다. A씨는 “비장애인에게도 판매할 거면 장애인전용석을 뭣하러 지정해 놨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300석 이상의 대형 영화상영관은 장애인전용석을 갖추고 보조인력을 배치해야 하지만 이를 어겨도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의 경우 원칙적으로 비장애인이 장애인전용석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주말 메가박스 센트럴점을 찾아 장애인전용석 발권을 요청하자 별다른 신원 확인 절차 없이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장애인전용석은 현장에서 장애인 복지카드를 제시한 뒤 구입해야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비장애인 발권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상영관 내 장애인전용석에 있던 비장애인 관람객들도 “입장할 때 장애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CGV용산역점과 롯데시네마 건국대입구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장애인전용석을 예매한 뒤 이튿날 찾은 상영관에서 현장 직원들은 장애인 여부를 묻지 않았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시스템상 비장애인의 장애인전용석 예매를 사전에 막기 어렵고 현장에서 매번 장애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영업적인 측면에서도 장애인이 이용하지 않을 경우 마냥 비워놓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CGV 측은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경우가 없도록 현장 교육을 하고 있다”면서도 “관객이 몰릴때는 장애인 여부 확인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는 장애인전용석 발권시 복지카드를 꼭 확인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상영관은 장애인을 위한 배려도 부족했다. 상영관 통로 폭이 50~60cm 정도에 불과해 휠체어가 이동하기엔 비좁을뿐 아니라 관람객 편의를 위한 라운지도 계단을 올라가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장애인전용석은 영화 관람이 불편한 맨 앞줄 구석자리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울 시내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메가박스의 경우 장애인전용석 161석 중 157석(98%)이 맨 앞줄이다. 롯데시네마는 354석 중 282석(80%), CGV는 402석 중 224석(56%)이 상영관 맨 앞줄에 배치돼 있다. 영화관 측은 구조와 안전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관객은 계단을 이용하기 어렵고 비상시 대피도 감안해야 한다”며 “불가피하게 입·출구와 가까운 곳에 장애인석을 배치했다”고 해명했다.

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장애인전용석이 맨 앞에 몰려 있어 장애인의 동등한 영화 관람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장애인전용석마저 비장애인에게 판매하는 것은 장애인이 영화를 관람할 기회 자체를 빼앗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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