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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검은색 가죽재킷에 선글라스. 귀밑에서 턱까지 난 구렛나루가 야성적이다. “의리” “의리” “의리”. 등장부터 우렁차다. ‘국민 의리남’ 김보성이 아니다. 개그우먼 이국주다. 요즘 ‘여자 김보성’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정수기? 옥장판? 사야지! 의심 노(No), 피라미드와의 의리!” tvN ‘코미디 빅리그’ 코너 ‘코빅열차’ 속 모습이다. ‘보성댁’으로 나오는 이국주는 말투부터 행동까지 김보성의 특징을 맛깔스럽게 따라한다. 에너지 넘치는 캐릭터에 남성적인 역할을 찾다 보니 김보성의 ‘의리 캐릭터’가 떠올랐다는 게 이국주의 설명이다.
이국주뿐만이 아니다. 의리열풍은 TV 속 예능프로그램을 강타했다. 특히 자막에 의리가 ‘풍년’이다. ‘민유으리’(MBC ‘아빠! 어디가?)처럼 캐릭터의 순수함을 강조할 때 주로 사용됐다.
△실종된 ‘의리’를 다루는 예능
대중문화 속 의리 활용은 웃음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즉 정의에 대한 관심의 환기가 다양하게 이뤄졌다. 이효리와 문소리가 출연하는 SBS ‘매직아이’는 데이트폭력이나 층간소음 같은 생활 속 도리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20~30대 두 명 중 한 명꼴로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내용부터 스토킹의 처벌수위에 대한 사회적인 이슈들을 들여다봤다. 연예인 사생활을 주로 다루는 토크쇼치고는 이례적이다. 김영욱 ‘매직아이’ PD는 “세대를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짜 이야기”라는 점에 의미를 뒀다.
기본을 지키지 않아 생기는 안전불감증도 소재로 등장했다. MBC ‘무한도전’은 지난 10일 방송에서 유재석·박명수·정준하 등 멤버들의 어린이 보호구역 규정 속도 준수를 점검했다. 일종의 ‘의리 테스트’다. “원칙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 우리가 등한시했던 원칙을 환기시키자는 의미”가 제작진이 설명한 기획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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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에 대한 감성적 갈구
관계를 중요시하는 의리의 힘은 대중문화에서 더욱 커진다. 경쟁이 심해지고 개인화되면서 ‘정이 고픈’ 시대에 의리는 치유의 소재로 인기다. 연예인들이 한집에서 함께 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올리브 ‘쉐어하우스’나 SBS ‘룸메이트’가 대표적. 방송은 낯선 이들끼리 삶을 공유하며 관계의 소중함을 비춘다. 이수호 ‘쉐어하우스’ PD는 “혼자 살고,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기획했다”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에 충실해야 생활이 풍족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팬과 스타의 의리…god부터 김추자까지
“15년 동안 팬이었어요. 의리 지킨 거 맞죠? 앞으로도 주욱~.” 남성 듀오 플라이투더스카이의 팬들이 트위터로 건넨 컴백 축하 인사다. 플라이투더스카이는 지난 20일 9집을 내고 5년 만에 돌아왔다. 스타와 팬과의 의리는 대중문화를 지탱하는 기둥. 팬들의 지지 없이는 스타들도 무대에 오래 설 수 없다.
그룹 god가 12년 만에 원년멤버들이 모두 모여 컴백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팬들의 의리를 등에 업은 god는 이달 초 공개한 신곡 ‘미운오리새끼’로 온라인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다. 내달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릴 데뷔 15주년 기념 콘서트도 30분 만에 3만석이 동났다. 또 ‘커피 한잔’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김추자도 “오랜 시간 한결같이 사랑해주시는 팬들 덕에 무대에 다시 올라 왔다”며 33년 만에 컴백을 알려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스타와 팬 사이의 의리를 다룬 토크쇼까지 나왔다. 강호동이 진행하는 MBC ‘별바라기’다. ‘국내 최초 합동 팬미팅’이라는 콘셉트로 기획된 프로그램은 스타와 팬이 함께 출연해 추억을 들려준다. 이달 초 파일럿 방송으로 전파를 탔다가 시청자의 반응이 좋아 내달 중순부터 매주 정규 편성되는 행운을 누렸다. 방송평론가 김교석은 “잃어버린 정같은 감성에 대한 갈망이 가족예능 형식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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