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매운맛 남다른 이유는 '이것'…고추장, 식품 반도체로 키워야"

[세계 입맛 사로잡은 K매운맛]②한국 세계 매운맛 '종주국'된 이유
"푹 담그는 발효문화…향신료 풍미 의존 외국과 달라"
라면 김치뿐 아니라 고추장 등 소스까지 덩달아 인기
한·서양 융합음식 개발해야…소스 등 전략적 육성 필요
  • 등록 2024-07-09 오전 5:36:00

    수정 2024-07-17 오전 11:16:01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맵지만 맛있다.’

한국의 매운맛이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 비단 라면 뿐만 아니라 김치, 고추장 등 소스류까지 인기가 확장하는 추세다.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한국 외에도 세계 속의 매운맛은 많다. 왜 그중에서도 K매운맛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학자와 푸드칼럼리스트, 컨설턴트 등 전문가들을 통해 그 흥행 요인을 들여다봤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매운맛에 감칠맛까지 더했다…세계 유일무이한 K발효 문화

각계 전문가들은 K매운맛의 강점으로 범용성과 확장성을 꼽았다. 고추장으로 대표되는 K매운맛은 비교적 세계 어느 요리 문화와도 잘 조화하는 소스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단순히 매운 것뿐 아니라 음식의 감칠맛까지 살린다. ‘김치치즈볶음밥’, ‘고추장 까르보나라 파스타’ 등 K매운맛을 가미한 퓨전 한식은 더이상 세계인에게 낯설지 않다.

음식점 컨설팅과 미식 콘텐츠를 만드는 놀고먹기연구소 이우석 소장은 이런 K매운맛의 강점을 한국의 발효 문화에서 찾는다. 장을 담가 고추장 등을 만드는 문화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핵심은 매운맛과 감칠맛을 극대화하는 숙성 과정이다. 이 덕분에 K매운맛은 향신료의 풍미에만 기대는 외국의 매운맛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소장은 “그동안 칠리소스 등 매운맛에 단맛을 더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여기에 장(젓갈)의 감칠맛까지 더하는 고추장 같은 맛은 드물었다”며 “메주가루로 고추장을 담는 등 발효 문화의 매운맛을 다른 식(食)문화권에선 접하기 어려워 독보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특히 K드라마나 K무비 등 한류는 K매운맛을 싹틔운 토양과도 같았다. 한국 배우들이 미디어에서 떡볶이, 라면, 김치를 먹고 매워하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현지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장은 “K매운맛은 한류 콘텐츠를 통해 현지 시장에 진입하기 매우 유리했다”며 “낯선 맛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해 이젠 현지인의 식탁까지 스며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K매운맛의 힘’ 이젠 라면 넘어서 K푸드 전반으로 확산

국내 식품업계는 K매운맛을 기반으로 큰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삼양식품(003230)은 불닭볶음면의 해외시장 인기에 지난 1분기에 매출(연결기준) 3857억원, 영업이익 80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대비 각각 57%, 235% 늘어난 수치다. 삼양식품 주가는 지난 1년간 550%나 상승하면서 시가총액도 8000억원대에서 5조원대로 껑충 뛰었다.

올해 초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 대표이사 부회장을 집중 조명하는 보도를 냈다. 김 부회장은 불닭볶음면 소스 개발을 위해 1년 동안 매운 소스 2t, 닭 1200마리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농심(004370)과 오뚜기(007310)도 약진하고 있다. 농심은 미국 내 신라면 등 인기에 힘입어 지난 1분기 해외 매출이 두자릿 수 증가했다. 1분기 매출액 8725억원 가운데 37.7%인 3292억원이 해외 매출에서 발생했다. 농심의 해외 라면 매출 비중은 2019년 33%에서 지난해 44%까지 상승했다. 오뚜기도 라면을 중심으로 해외 매출이 지난 1분기 15% 성장했다.

K매운맛의 인기는 라면을 넘어서 이제 김치, 참치캔, 고추장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김치 수출량은 4만4041t으로 전년(4만1118t) 대비 7.1% 늘며 역대 최대 수출량을 기록했다. 대상(001680) 종가의 김치 수출국은 이제 남미와 유럽까지 92개국에 달한다.

지난해 양념소스 및 전통장류를 포함한 한국의 소스류 수출액도 전년 대비 6.2% 증가한 3억8400만 달러(한화 약 5302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실제로 CJ제일제당(097950)의 한국 전통장(고추장·된장·쌈장) 등 K소스의 해외 매출은 지난해 1~10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0% 성장했다. 동원F&B(049770)의 고추참치 수출국도 최근 미국, 일본, 베트남, 중국 등 28개국으로 늘었다.

롱런 위해선…“제대로 된 인식 확립 소스 브랜딩화 필요”

K매운맛의 지속적인 인기를 위한 과제도 남았다. K매운맛의 제대로 된 인식 확립이 필요하다.

김새봄 칼럼니스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하는 한국인의 성향도 K매운맛을 세계 유행의 중심에 있게 한 요인”이라면서도 “K매운맛이 자극적인 매운맛으로만 인식되지 않도록 발효장·국물 문화 등 K푸드를 문화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빠르게 정보가 퍼져 나가는 현시점에서 제대로 된 한식과 문화를 알릴 수 있어야 한다”며 “불고기버거, 들깨파스타, 고추장빠에야 등 한식과 서양의 음식이 융합된 음식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홍보해 경쟁력을 더해야 인기를 지속할 수 있다”고 했다.

학계에선 K매운맛의 인기를 기반으로 소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소스는 이른바 ‘음식의 반도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소스는 활용도가 높아 고기와 샐러드 등 각국의 어느 음식에도 사용할 수 있는 반도체와 같다”며 “앞으로 소스에 초점을 맞춰 K푸드의 방향성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대표 사례로 일본의 ‘기꼬만’ 간장을 꼽았다. 기꼬만은 1917년 설립해 100여년 이상 간장을 만들고 있는 업체다. 1960년대 ‘데리야끼 소스’를 처음 만들어 상품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북미 등 현지 음식문화와 융합하려는 노력으로 현재 미국 간장 시장 점유율이 50%에 달한다. 문 교수는 “우리도 고추장 등 제품을 글로벌 브랜드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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