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의 분쟁이 격화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불안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휴전 상태인 한반도 역시 언제든 전쟁이 날 수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 민간인 마을에서 영유아 시신 수십 구가 발견되는 등 반인륜적 행태가 벌어진 것과 관련 “남의 일 같지 않다”,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피난처가 돼 줄 시내의 대피시설의 관리는 허술했고,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시민들이 대피 장소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 서울 지하철에 부착된 대피소 안내판 (사진=이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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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 전쟁에서 시민들 불안감 느껴
11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따르면 시민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6·25 전쟁을 연상케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마스는 유대 안식일인 지난 7일 새벽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는데, 6·25 전쟁이 일요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같은 전술을 활용해 기습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고하기도 했다.
직장인 이모(25)씨는 “‘X’(옛 트위터)에서 사람이 총에 맞아 죽고 납치당하는 영상이 떠돌던데 이런 만행이 21세기에 벌어진다니 충격적”이라며 “요즘 국제 정세를 보면 3차 대전도 시간 문제 같다”고 말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도 철저한 안보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직장인 마모(41)씨는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상대도 되지 않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것을 보면 우리도 북한을 우습게 여겨선 안 될 것 같다”며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도 있지 않나”라고 밝혔다. 프리랜서인 장모(30)씨는 “뉴스를 보며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다”며 “국군 장병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 대피소로 지정된 서울 종로구 한 교회 지하 계단에 적재물이 쌓여있다. (사진=이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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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앱, 대피소 아닌 놀이터 안내안보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는 요즘이지만, 포격·폭격으로부터 피신할 대피소에 대한 관리와 홍보는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 민방공 경보 시 국민행동요령에 따르면 대피 장소를 명확히 알기 어려울 경우 우선 가까운 지하철역, 지하 주차장, 대형 건물 지하실 등으로 이동하도록 하고 있다. 이데일리가 정부대표 재난안전 포털앱 ‘안전디딤돌’에 나와 있는 서울 지역 대피소를 점검한 결과 일부 민간시설 대피소는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교회는 지하 1층~지하계단 4층이 대피소로 지정됐지만 각종 적재물이 쌓여 사실상 창고로 활용되고 있었다. 식수와 방독면 등 비상용품이나 안전용품은 보이지 않았고,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듯 천장 곳곳에 거미줄이 처져 있었다.
안전디딤돌이 엉뚱한 장소를 대피소라고 안내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피소로 지정된 서울 성북구 아파트 단지의 한 지하주차장을 안전디딤돌이 안내하는 지도를 따라가 보니 어린이 놀이터가 나왔다. 실제 대피소는 이 놀이터로부터 2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에 10여년 째 거주하는 주부 강모(54)씨는 “이곳 주민들은 지리에 익숙해 지하주차장을 쉽게 찾겠지만 초행인 사람들은 오히려 길을 헤매게 만드는 꼴 아니냐”며 “전반적으로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피소를 찾아야 한다면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노인이나 장애인 등 거동 자체가 쉽지 않은 이들을 위한 배려도 찾기 어려웠다. 서울 지하철역은 수십 개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휠체어 경사면·점자 블록·시각 경보기 등이 설치된 곳은 소수에 불과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지자체장이 대피소 지정 시 안전취약계층의 접근성을 고려하도록 하고,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는 대피장소를 마련하는 등의 법안(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다수 발의됐으나 상임위 계류 중이다.
| 정부대표 재난안전 포털앱 ‘안전디딤돌’ 지도에서 대피소 좌표로 설정된 서울 성북구 한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을 찾아간 결과 어린이 놀이터가 나왔다. (사진=이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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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시민들이 평시 민방위 훈련 등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위기관리학회 부회장인 문현철 호남대 교수는 “‘이·팔’, ‘러·우’ 전쟁은 미사일과 포탄이 날라다니는 전형적인 미래 전쟁의 모습이고, 특히 서울은 휴전선으로부터 47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재래식 포탄으로도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다”며 “건축물 붕괴와 파편으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서는 평시 민방위 훈련 시스템이 잘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큰 틀에서 국가 전략을 세우고 그에 따라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종수 숭실대 대학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전쟁뿐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 기후변화 등 재난이 상시화되고 있다”며 “우리도 유럽과 미국처럼 안전(safety)중심에서 안보(security)중심으로 바꾸고 정책의 연속성을 가져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