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1980년대생은 어쩌다 영끌족이 되었나

세습 자본주의 세대
고재석|348쪽|인물과사상사
  • 등록 2023-03-26 오전 9:44:09

    수정 2023-03-26 오전 9:44:38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1980년대생은 산업화 이후 풍요 속에서 자라며 큰 꿈을 펼치란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러나 막상 이들이 성인이 되자, 마주한 현실은 저성장의 늪이었다. 20대 때는 고시원 인생, 30대 때는 월급 인생, 급기야 울며 겨자 먹기로 영끌족(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세대의 절박한 행동을 의미)이 됐다. 집값 급등 탓에 결혼까지 포기해야 했으며, 국가가 제공하는 경제적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책은 1986년생인 저자가 겪은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자,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80년대생들의 이야기다. 결혼과 부동산 시장의 패자로 불리며 사다리를 잃은 세대들이 경험한 한국 자본주의의 민낯을 까발린다. 동시에 80년대생들이 민생과 기회(공정)의 문제에 예민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항변한다.

저자에 따르면 스펙 시대를 건너온 1980년대생은 “단군 이래 가장 근면 성실한 세대”다. 여론에서 거론되는 것처럼 이기적인 세대거나 권리만 주창하는 세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 담론에 거부감이 없었던 집단이었지만, 2022년 3월 대선에선 윤석열 후보를 찍으며 민주당의 재집권을 막았다.

저자는 이들의 정치적 변심을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서 찾는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영끌의 후폭풍으로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세습을 거치지 않고는 내 명의의 아파트를 가질 수 없다는 절망감이 이들을 감쌌다. ‘더 고생하면 좋은 집에 살 것’이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서사는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비정규직 공화국의 출발점에 선 세대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토양을 다진 건 바로 노무현 정부 때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며 2007년 일명 ‘비정규직보호법’을 시행했지만, 2년마다 해고가 잇따랐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의 형에게 치를 떨었다. 전직 대통령의 비선 실세에 분노했고, 전직 법무부 장관의 위선을 조롱했으며 부동산 시장의 불평등에 화를 냈다. 30대는 조국 사태 이후로 민주당에 정나미가 떨어졌고, 특권층 검사들이 주도하는 윤석열 정부에 희망을 보지 못한다.

저자가 보는 30대의 삶은 꽉 막힌 현실이다. 저자는 “투자에도 적극적이고 부업에도 두려움 없이 뛰어들면서 ‘갓생’의 삶을 산다. 이것이 사다리를 잃은 세대 혹은 생존주의 세대가 사는 법”이라며 이들은 “최선을 다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을 통해 내가 하는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보며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위로했고, 유승민 전 국회의원은 “보수든 진보든 위선과 무능의 정치가 싫다는 이 세대가 진짜 원하는 것은 비루하지 않게, 인간답게 살 만한 세상”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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