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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2021년 3월. 일본 후쿠시마현에선 도쿄올림픽 성화봉송을 시작했다. 성화 주자 앞에서 달리는 스폰서 차량에선 쉴 새 없이 스피커를 통해 이런 외침이 나온다. “후쿠시마 여러분, 1년을 기다렸습니다. 최고의 추억을 만듭시다! 즐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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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체론: 천황제 속에 담긴 일본의 허구’, ‘영속패전론’ 등의 저자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시라이 사토시 교토세이카대학 정치학 교수는 최근 아사히신문 계열 주간지 론자에 기고한 글에서 성화봉송 분위기를 이렇게 평가했다. “즐기라는 말이 섬뜩한 명령처럼 느껴진다.”
도쿄올림픽을 즐기자는 행간엔 무언의 압력이 녹아있으니, 바로 ‘즐기지 않는 자, 후쿠시마의 부흥을 부정하는 것’이란 은근한 눈치주기란 것이다. 올림픽을 반기지 않는 자는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구키요메나이(KY)’, 즉 공기(구키)를 읽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게 시라이의 지적이다. 2차대전때 쓰던 ‘비국민’ 딱지가 ‘KY’로, “나라를 위해 죽어라”는 노골적 군국주의가 “나라를 위해 즐겨라”라는 식으로 되살아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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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가 던진 비판의 화살은 크게 두 군데를 향한다. 코로나 대응에 총력을 다해야 할 시기에 정부는 왜 국민세금을 올림픽에 쏟아붓는가? 올림픽 특수는커녕 16조원 넘는 손실이 예상되는데 왜 일본 언론은 잠자코 있는가?
당초 스가 총리는 올림픽을 강행하는 이유로 “인류가 코로나를 극복한 증거로 도쿄올림픽을 연다”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막상 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는 성화봉송식엔 불참했다. 정치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에서다. 이 모습이야말로 스가 총리가 올림픽을 올해 있을 선거의 발판 정도로만 여긴다는 방증이라는 게 시라이의 설명이다.
언론을 향한 그의 비판은 더 신랄하다. 당초 7000억엔 정도로 추산된 올림픽 개최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 3조엔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다. 비용이 이렇게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동안 언론은 왜 가만 있었냐는 것이다. 그간 도쿄올림픽 찬반 설문을 실시해 온 일본 언론으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 터다. 일본이나 국외에서 코로나 재유행 기미가 보일 때마다 “일본 국민 대다수가 올림픽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여론이 이렇게 나쁘다는 점을 전달하는 데 안주한 나머지, “개최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언론사가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에 시라이는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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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의 일침을 향한 반응은 뜨겁다. 도쿄올림픽 후원사 중 한 곳인 아사히신문 계열사에 이런 글을 기고한 게 의미심장하다는 반응부터, 연예인 등이 줄줄이 성화봉송 주자 자리에서 사퇴하는 걸 보고도 정부는 느끼는 게 없나 하는 성토도 줄을 잇는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이 나라가 진짜 민주국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추한 것을 안 보이게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날카롭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점을 일본인들도 느끼는 모습이다. 불편한 과거는 깨끗이 지워 잊으면 된다는 전형적인 일본식 역사관의 문제 말이다. “후쿠시마는 안전하다”는 일본 정부 발표와 달리 원전에선 방사능 덩어리가 계속 나오고, 관리주체인 도쿄전력을 향한 소송이 끊이지 않은 것이 지난 10년간 일본 사회의 모습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문제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믿어 온 일본식 역사관이 끝내 일본 사회 내부마저 좀먹는 듯하다.
<맨발의 겐>에서 겐의 아빠는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올바를 리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 “비국민이라 해도 좋아. 타인이나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게 진짜 용기야.” 우여곡절 끝에 열린 도쿄올림픽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결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보다는 후쿠시마 참사를 올림픽으로 지워 버리는 게 우선인 정부와, 도쿄올림픽을 즐기지 않는 자는 비국민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일조한 언론의 합작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