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상직, 부적절한 인사청문회 발언 뒤늦게 구설

2015년 임종룡 금융위원장 청문회 복기해보니
한토신 1·2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에 사실상 참전
'먹튀펀드' 견제하는 척 고교동창 편들었나?
  • 등록 2020-10-26 오전 5:30:00

    수정 2020-10-26 오후 2:31:34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인사청문제도를 청문위원이 사적 용도로 전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뒤늦게 확인됐다. “국회의원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폭넓은 의정활동 일환”이란 반박도 있다.

이상직 의원이 지난 2015년 3월1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갈무리)
26일 국회 등에 따르면 이상직 무소속(구 새정치민주연합, 현 더불어민주당 탈당) 의원은 지난 2015년 3월10일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한국토지신탁(034830) 대주주 변경 승인의 건’에 대해 질의했다. 이 의원은 “지금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국내 금융시장 혼란을 초래하는 먹튀 논란으로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다”면서 “제2의 론스타, 제2의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제2의 소버린 사태가 안 오게끔 금융위원장으로서 잘 정책 지도를 하셔야 된다”고 훈수했다.

당시 한토신은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있었다. 2015년 3월30일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한토신 최대주주인 엠케이전자(033160)는 2대주주인 아이스텀앤트러스트 등과 치열한 표 대결을 준비하던 시기다. MK 측은 리딩밸류1호유한회사 34.08%와 MK인베스트먼트 3.49%를 합해 37.57%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아이스텀 뒤에는 글로벌 PEF인 KKR이 버티고 있었다.

KKR은 2014년 8월 아이스텀과 지분(31.42%) 인수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9월 대주주 변경 승인을 신청했다. 해가 가도록 진척이 없자 KKR은 2015년 1월 보고펀드와 연대해 대주주 변경 승인을 재신청했다. 변양호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이 공동대표를 맡았던 보고펀드(현재 이재우 단독대표)는 한때 국내 최대 PEF였다. KKR-보고 측은 아이스텀 인수분 31.42%와 파웰 인베스터(KKR이 최대주주) 보유분 3.59%를 합해 35.01%를 확보해 MK 측과 지분 차가 2.56%에 불과했다.

이런 살얼음판 승부에 불쑥 이 의원이 끼어든 것이다. 이 의원은 임 후보자를 향해 “금감원에서는 반대를 하는데 금융위에서는 또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KKR이)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피하기 위해 ‘꼼수’로 3개의 SPC(특수목적법인)로 쪼개 가지고 들어왔다” “검은머리 외국인이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건 뿌리 뽑아야 한다, 자본시장의 독버섯”이라고 지적했다.

“한토신 문제는 지금 심사가 진행 중이고 아직 취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보고받지 않았다”는 임 후보자는 “앞으로 증권선물위원회를 중심으로 공정한 심사를 할 텐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다만 관련 법령이나 절차에 따라서 대주주 심사요건 충족 여부를 아주 엄정하고 공정하게 심사하도록 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자 청문회 다음날 열린 증선위(2015년 3월11일)에서는 대주주 변경 승인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정기주총 개최 직전 열린 증선위(2015년 3월25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MK 측은 정기주총에서 대주주 적격성 이슈를 해소하지 못한 KKR-보고 측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고 경영권을 가져갔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이 5년 만에 드러났다. 한토신은 총 9명의 이사 중 임기가 만료되는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4명을 당시 정기주총에서 선임했다. MK 측과 KKR-보고 측은 이사회 장악을 위해 각자 사내외이사를 추천했다. 사내이사는 모두 MK 측이 추천한 김두석 한국토지신탁 부사장(재선임), 강성범 MK인베스트먼트 상임고문로 채워졌다. 사외이사에는 아이스텀 측이 추천한 허용·성민섭 씨와 MK 측이 추천한 박차웅·이승문 씨가 각각 선임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MK 측이 추천한 박씨는 이 의원 전주고 58기 동기 동창이자 절친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박 씨는 2012년 4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이 의원이 창업한 이스타항공에서 사내이사를 지낸 바 있다. 이스타항공에서 한토신으로 ‘등기임원 갈아타기’를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의원은 자신의 친구를 사외이사로 밀어주는 MK 측을 비호한 말을 한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이 의원과 박씨, 차정훈 MK전자·한토신 회장 세 사람 모두 ‘우석대 미르CEO문화아카데미 원우회’에서 활동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전주해성고를 졸업한 차 회장은 이 의원, 박씨와 동년배(1963년 출생)이기도 하다. 세 사람이 사전 교감 하에 이번 일을 진행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정황을 놓고 해석이 엇갈린다. 익명을 요청한 야당 관계자는 “돌이켜 보면 이 의원이 돌연 왜 그런 질의를 했는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회회의록을 검색한 결과, 이 의원이 한토신을 언급한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다만 2015년 4월28일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KKR을 예로 들며 외국계 사모펀드 먹튀를 또다시 거론한 바 있다. 이는 외국계 사모펀드를 견제해야 한다는 소신의 발로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청한 변호사는 “경위가 어찌 됐든 이 의원이 좀 더 조심했었어야 할 사안 같다. 차제에 인사청문회 제도를 손보고 청문위원들도 사후에 논란을 낳을 소지가 있는 경우 적극적으로 기피신청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물론 큰 문제로 삼기 어렵다는 의견도 비등하다. 또 다른 변호사는 “사람 속을 어찌 알겠느냐. 질문의 동기가 뭐다 딱 잘라 말할 순 없을 것”이라며 “드러난 내용만으로 현행법에 저촉되는 지점은 없는 듯하다. 하물며 대가성이 입증된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MK 측은 “시간이 오래 지난 데다 (이 의원이 질의한 배경에 대해)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다. 이어 “박씨를 추천한 것은 부동산 및 법률 전문가라는 점을 감안했고, 2018년 3월 일신상의 사유로 물러났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의원은 이와 관련한 질문을 담은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에 일절 응답하지 않았다. 수차례 통화 시도에도 연락이 닿질 않았다. 박씨는 별건으로 피소돼 현재 해외 도피 중이다.

한국토지신탁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1996년 전액 출자해 설립(자본금 300억원)한 국내 1호 부동산신탁회사로 2007년부터 민간에 지분을 매각, 민영화했다. 2001년 코스닥시장에 입성했으며 2016년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상장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2556억9577만원이다. 영업수익 기준 시장점유율 1위 리딩 컴퍼니다. 수익성도 높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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