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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국가독립 수호에 대한 대통령의 책무를 명시한 제66조 2항이고 다른 하나는 법관 독립의 의무를 담은 103조다. 헌법 103조는 법관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법관독립은 헌법에 명시될만큼 중대한 가치라는 의미다.
이공현(68·사법연수원 3기) 전 헌법재판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은 9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이야기하며 헌법 103조를 수차례 언급했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정치성향을 감시·관리했다는 블랙리스트 의혹은 대법원이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놓은 후에도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가 재조사를 요구하는 등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의 본질은 법관독립이 침해 받았다는 의심”이라며 “여전히 판사들과 국민들은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조사결과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제대로 규명돼야 할 문제”라며 재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전 재판관은 김명수(58·15기) 신임 대법원장에 대한 세간의 우려도 일축했다. 김 대법원장은 과거 대법원장과 비교해 연륜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는 “사법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법관의 독립을 지켜내느냐다”며 “대법원장은 법관독립에 대한 인식과 의지가 중요하지 어떤 경력을 가졌느냐는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의 가장 큰 책무가 대법관회의를 잘 이끌고 법률심(3심)을 잘 다루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사법부가 오랫동안 집중한 빠르고 효율적인 재판의 양면도 지적했다. 사법서비스의 속도와 효율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법관을 평가해 이를 인사 등에 반영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사법부 관료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재판 지원조직에 불과했던 법원행정처가 비대해진 배경도 막강한 인사권과 함께 효율적인 재판에 대한 집착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제헌법자문기구인 베니스위원회는 효율적인 사법서비스를 위해 판사에 대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라면서도 “법관 독립과 충돌한다면 독립성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법관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면 평가하지 않는 게 낫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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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재판관은 개헌논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 등 정치권이 개헌 시한을 내년 6월 지방선거 때로 잡았으나 여지껏 국민적인 논의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정치·국방·경제 등 수많은 분야에서 개헌이 필요하다고 한다”면서도 “정작 국민들은 논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전혀 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1987년 9차 개정헌법이 지금까지 30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개헌 우선순위를 정한 뒤 이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를 시작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오래가는 헌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은
△1949년 전남 구례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13회 사법시험 합격(1971년) △서울지방법원 수원지원(현 수원지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부산고법 부장판사 △대법원장 비서실장 △법원행정처 차장 △헌법재판관(2005~2011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