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고민 덜었더니 정치 리스크
9일 이데일리가 10대그룹 38개 주요 계열사의 하반기 경영환경을 중간점검한 결과 경영환경이 악화했다고 응답한 76.3%(29곳) 기업들은 그 이유로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등 경쟁국의 정책 변화(35.7%), 새 정부 출범 등 국내 상황 변화(28.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지난해 말 30.4%의 응답률로 가장 많은 기업이 ‘환율 급변동 등 금융리스크 확대’를 올해 경영환경 악화의 이유로 들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주요 경쟁국의 정책 변화를 우려했다. 상반기 사드 보복 여파로 한국 자동차의 중국 시장 판매량이 반 토막 난 것을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주장에 철강 등 관련 산업 기업들의 기강이 흔들린 탓이다.
아울러 기업들은 지난해 말과 달리 하반기 들어 특히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국내 정세 변화를 신경 썼다. 정권 초기부터 기업들에 대한 강한 규제 압박이 예고된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새 정부가 ‘재벌 개혁’의 목적으로 내세운 ‘기업 규제’를 비롯해 경유세 인상과 정규직 전환 등 새로운 정책들이 쏟아질 때마다 산업계는 요동쳤다. 정부는 추경안 처리와 맞물려 늦어도 이달 중하순까지는 경제정책방향을 제시하기로 했다. 또 내달말까지는 각종 현안에 대한 계획안 및 대책도 잇따라 선보일 방침이다. 기업의 투자환경 조성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에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설문조사에 답한 대기업 한 관계자는 “해외 경영환경 불확실 악재가 여전한 가운데 정부의 규제가 더해지면, 고용창출과 신사업 투자 등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며 “안팎으로 숨 쉴 곳이 없어져선 안 되기 때문에 각 산업의 특수성에 맞춘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기업들의 체감경기 부진 역시 외환위기 이후 최장 기간 지속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 7월 전망치는 95.6으로 14개월 연속 기준선 100을 밑돌았다. BSI는 경기동향에 대한 기업가들의 판단·예측·계획의 변화추이를 관찰해 지수화한 지표다. BSI가 기준치 100보다 높으면 긍정 응답 기업 수가 부정 응답 기업 수보다 많음을 의미하며, 100보다 낮으면 그 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