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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지난해 7월 당시 국립오페라단장 자리는 ‘독이 든 성배’와 다를 바 없었다. 바람 잘 날 없던 인사 탓에서다. 2014년 김의준 전 단장이 사퇴한 이후 단장자리를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10개월간 공백기를 겪다가 어렵게 수장이 된 한예진 전 단장은 자질논란 끝에 결국 취임 53일 만에 물러나고, 다시 넉달이 지난 뒤였다.
김학민(54)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 역시 자격 시비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직무실에서 만난 김 단장은 이데일리와의 취임 1주년 단독인터뷰에서 “1년이 10년 같더라”며 웃었다.
김 단장은 “수장을 맡은 뒤 10년이 지난 듯하다. 지루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온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하다 보니 몸이 먼저 알더라”면서 “예술단체 수장 역할이라는 게 행정가의 마인드를 갖추면서도 예술가 입장에서 이끌어가야 하는데 이제야 두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도가 된 것 같다”고 자체 평가했다.
1년 기초 작업…효과 오래가는 일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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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업은 ‘시즌제’ 도입이었다. 그동안 1∼12월로 정해놓은 체제를 외국 유수의 오페라단처럼 9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바꿔 진행했다. 첫 2015~2016 시즌제 작품인 ‘진주조개잡이’(2015년 10월 15~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국내 초연 성공에 힘입어 뉴프로덕션으로 선보인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2015년 11월 18·20·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도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2014년 제작한 ‘라트라비아타’는 작품성이 높고 대중성이 뚜렷한 만큼 국립오페라단 레퍼토리로 정착하기 위해 2015년 12월 예술의전당, 2016년 4월 서울 국립극장을 비롯해 천안 예술의전당, 안동 문화예술의전당 등 여러 지역에서 꾸준히 공연하도록 했다. 국립오페라단 고유의 18번인 레퍼토리 정착과 신작의 밸런스도 7:3 정도로 맞추고 내실을 다진다는 계획이다
그간 운에 호소…오페라단 시스템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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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살카’는 김 단장이 기획·제작에 참여한 신작이자 연출을 맡은 야심작이었다. 체코오페라인 만큼 체코어 전공 문학전문가를 찾아야 했는데 적임자가 드물어 불가피하게 아동영문학 박사과정 중인 아내를 무보수로 기용한 게 논란을 불렀다. ‘루살카’는 김 단장 연출 아래 오로지 국내 제작진의 힘으로 만들어져 향후 재연을 통해 가다듬어진다면 작품성과 흥행성을 노릴만한 작품이란 평을 받긴 했지만 제작과정에서의 문제, 작품의 이분법적 해석 등으로 김 단장의 연출력에 대한 의문을 확실히 해소시키진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단장은 “마(魔)가 끼었나 싶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국내 오페라계는 당장의 것을 처리해야 하는 구조다. 루살카 사건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취임 초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벽에 부딪쳤다. 극장 스케줄이 되면 오케스트라 일정이 맞지 않거나 둘 다 해결하면 해외관계자와의 소통이 풀리지 않는 식”이었다고 그때를 돌아봤다.
“세계적 스타인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이나 독일 출신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을 내년까지 데려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어찌 보면 시스템에 호소해야 하는데 운에 호소해 왔다. 여유있게 플랜을 짜고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오페라단을 만드는 게 지금의 단장이 할 일이다.”
첫 단추 제대로 끼우는 작업…대중·심오함 잡는다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35)는 밀라노 라스칼라극장에서 조연출로 탄탄한 경력을 쌓은 연출가이자 대본가로 이번 무대로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다. 신인을 발굴했다는 점, 진정한 국제화 형태이자 우리 씨앗의 토양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우연이 아닌 국립오페라단 전원이 부단히 노력한 결과다.”
김 단장은 2019년까지 라인업을 짜 놓은 상태. 그는 “대관령음악제·영화·지방 등을 다니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고 계획을 짜 놓은 상황이지만 10개 중 2개만이라도 실행하자는 마음”이라면서 “실패를 두려워 말라가 모토다. 평가는 나중에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차근차근 계획대로 해나겠다. 임기 후 10년, 20년 뒤 오페라단이 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첫 단추를 끼우는 역할만 제대로 하자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립오페라단은 성장기다. 10대는 아니고 20대 초반 군대 갔다온 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딱 그 즈음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기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책임감이 크다.”
10년 후에 그는 어떤 모습일까. 김 단장은 “아마도 연구실에 처박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아마도 책을 쓰고 있을 거 같다. 오페라에 대한 얘기다.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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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서울 출생. 어머니가 피아니스트로 다섯 살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고 자랐다. 장남이라 음대는 접고 고려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연극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가 영화 ‘사랑과 슬픔에 볼레오’를 본 뒤 오페라를 해야 겠다고 마음을 굳힌 후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현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장과의 인연으로 서울대에서 음악이론 석사·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1994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 오페라과에서 연출과 성악·지휘법·무대디자인 등을 공부했다. 2000년 국내 유일의 오페라 연출 실기박사를 받은 뒤 오페라·뮤지컬을 포괄하는 연출가로 국내외서 지속적인 활동을 했다. 대학원 재학시절 예음 서양음악 부문 평론상을 받으면서 왕성한 평론활동을 하기도 했다. 저서로 베스트셀러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 외에 ‘오페라의 이해’ ‘후기낭만주의오페라’ ‘뮤지컬의 이해’ ‘뮤지컬양식론’ 등이 있다. 주요 연출작으로 오페라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파우스트’ ‘세비야의 이발사’ ‘오르페오’ ‘루살카’ 등이 있으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작업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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