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분양 열기 속 ‘4순위 청약’ 인기…왜

‘묻지마 청약’ 탓에 생기는 미분양
우선권 받는 4순위 청약자 급증
청약통장 없는 수요자도 분양 가능
16대 1 경쟁률 ‘힐스테이트 진건’
당첨 부적격 13가구 4순위에 돌아가
건설사도 미분양 해소 ‘일석이조’
  • 등록 2016-07-12 오전 5:00:00

    수정 2016-07-12 오전 5:00:00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분양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면서 과거 ‘4순위 청약’이라 불리던 내 집 마련 신청에도 당첨 확률을 높이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 호반건설이 최근 경기 고양시에서 분양한 ‘고양 향동 호반베르디움’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찾은 방문객들이 단지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호반건설]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고양 향동지구는 서울과 가깝고 분양가도 높지 않아 1순위에서 청약 마감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보유한 통장이 2순위라 당첨 가능성이 희박해 미계약분에 대해 우선권을 주는 ‘내 집 마련 신청’을 했어요.”(경기도 일산신도시에 사는 30대 주부 윤모씨)

호반건설이 지난 8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향동지구에서 공급한 ‘고양 향동 호반베르디움’ 아파트(2147가구) 모델하우스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1~2순위 청약통장을 가진 수요자들이 당첨 가능성 등을 문의하는 분양 상담 창구보다 미계약분 추첨권을 얻기 위한 내 집 마련 신청 부스에 더 많은 방문객이 몰린 것이다. 모델하우스 개장 첫날 분양 상담 대기번호는 500~600번대에 그쳤지만 내 집 마련 신청 대기자는 1000명을 훌쩍 넘었다. 주말 사흘간 건설사가 받은 내 집 마련 신청서는 1500건 이상이었다. 업체 측이 내 집 마련 신청 조건으로 보증금 100만원과 함께 통장 사본을 요구하는 바람에 모델하우스 인근 은행에는 사본을 발급받으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기도 했다.

건설사들, 미분양 안전장치로 내 집 마련 신청 선택

지난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6년간 이어진 부동산 침체기에 미분양 해소를 목적으로 시행됐던 일명 ‘4순위 청약’이 내 집 마련 신청이란 이름으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제도는 1~2순위 이후 발생한 미계약분에 대해 우선권을 주는 방식으로 청약통장이 없는 수요자도 프리미엄(웃돈) 없이 분양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건설사들이 조기 완판 가능성을 높이고 사업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내 집 마련 신청을 진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엔 시장 침체로 인해 순위 내 마감이 어려운 단지를 중심으로 내 집 마련 신청을 진행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업체들이 미분양 위험을 줄이기 위해 내 집 마련 신청을 받고 있다. 분양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높은 청약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묻지마 청약’으로 인해 실제 계약에선 미분양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산업개발이 지난 5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구역을 재건축해 공급한 ‘DMC2차 아이파크’ 아파트(1061가구)는 1~2순위 청약에서 최고 53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지만 사흘간 진행한 정당계약(합법적으로 당첨된 청약자가 맺는 계약)에선 20%가량 미계약분이 나왔다. 그러나 내 집 마련 신청자가 1000명에 달하면서 계약 닷새 만에 ‘완판’(완전 판매)될 수 있었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청약 경쟁률이 높았더라도 정당계약에서 완판되는 단지는 많지 않다”며 “예비 당첨에서 계약을 마치지 못하면 미분양 단지로 분류되기 때문에 내 집 마련 신청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요자들, 당첨 확률 높이고 더 좋은 물량 확보 가능

수요자들 입장에선 1순위 청약 대상자 급증으로 청약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내 집 마련 신청이 당첨 확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2순위나 청약통장이 없는 경우엔 주요 관심 단지 분양 물량을 프리미엄 없이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앞다퉈 신청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B9블록에 공급한 ‘힐스테이트 진건’ 아파트의 경우 지난달 1순위 청약에서 874가구 모집에 1만 4248명이 신청, 평균 16.3대 1로 다산지역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런데도 당첨 부적격자 발생 등으로 정당계약에서 전용 84㎡A형 미계약분이 13가구 나왔고 내 집 마련 신청자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눈에 띄는 점은 13가구 중 6층 이상이 절반을 넘는 7가구였고 20층 이상도 2가구나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분양업체 관계자는 “예비당첨자들은 잔여 물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청약 경쟁이 치열했던 단지라도 청약통장을 아끼려고 상당수가 추첨을 포기한다”며 “이런 경우 당첨자보다 좋은 동·호수가 내 집 마련 신청자에게 돌아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분양대행사나 시행사의 경우 내 집 마련 신청시 낸 보증금을 제 때 돌려주지 않거나 떼이는 경우도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팀장은 “약속된 기간 내 보증금 반환 여부가 신청서에 명시돼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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