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고(高)수익 투자에 목마른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비우량 회사채로 몰리고 있다. 증권사들도 미매각 된 비우량 회사채 물량을 적극적으로 내다 팔며 투자 수요에 화답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향후 시장금리가 상승할 우려가 있는데다 발행사 신용등급이 더 떨어질 경우 손실을 볼 수 있어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저금리 시대, 4.9% 이율의 치명적 매력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증권사 영업점을 통해 소매로 판매되는 비우량 회사채 물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들어서만 벌써 두 차례에 걸쳐 발행된 대한항공 회사채 4000억원 가운데 미매각 된 1600억원을 개인들이 사갔다. 2월 발행한 회사채(1500억원)의 경우 한국신용평가로부터 `A-` 등급을 받았고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BBB+` 등급을 줬다. 지난 14일 추가로 발행한 회사채(2500억원) 등급은 `BBB+`였다.
현대비앤지스틸과 한솔홀딩스, AJ렌터카, 크라운제과 등이 발행한 A- 등급 회사채 중에서도 300억원 정도가 개인에게 판매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회사채의 이자율은 2%대 중반에서 3%대 초반에 형성돼 있다. 회사채는 아니지만 아시아나항공이 항공권 매출채권이나 신용카드 마일리지 판매대금 등을 담보로 발행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에 대한 호응도 높다. 신용등급이 `BBB`인 아시아나항공은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 ABS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달 발행된 4050억원 규모의 `A-` 등급 ABS 중 상당량이 증권사를 통해 소매로 판매됐다. 최고 이자율은 5.471%에 달한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판매할 때 중위험 상품이라는 점을 고지하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며 “저금리가 장기화하고 증시도 박스권에 머물고 있어 리스크를 떠안고라도 수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美금리인상·업황부진 등 리스크 살펴야
그러나 낮은 신용등급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업황 악화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환위험도 높다. `A-` 등급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들이 영위하는 제지·철강·렌터카사업 등도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대한항공 회사채의 경우 2월분 수요예측 결과 청약률은 8% 수준이었고 이달 발행한 물량은 3%에 그쳤다. 지난 19일 진행된 한솔홀딩스 회사채 청약률도 15%로 집계됐다. 기관투자가들은 이들 회사채를 철저히 외면했다.
미국에서 지난해 12월에 이어 또다시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 금리 인상 국면에 진입할 경우 회사채 금리가 뛰고 국고채와의 스프레드(=금리 차이)도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증권사들은 이런 위험 요인을 인지하면서도 비우량 회사채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평균 0.3% 수준인 발행수수료와 더불어 개인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금리를 조정해 이중으로 마진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판매 확대를 위해 무리수를 두는 모습까지 포착되고 있다. 대한항공 회사채의 부채비율 한도는 기존 1000%에서 1500%로 상향 조정됐다. 지난해 일시적으로 1000%를 넘었던 점을 감안해 원리금 즉시 변제 위험을 피하려고 한도를 높인 것이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미국 금리 인상이 국내 채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산업내 과당 경쟁으로 현금흐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며 “비우량 회사채가 투자 대안으로 관심을 끌고 있지만 투자 결정과정에서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