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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아들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야.” 속사포 대사 속 팽팽한 긴장감이 객석을 압도한다. 단 1분 30초만에 하얀 캔버스를 새빨갛게 칠한 뒤 거친 숨을 몰아 쉬는 장면에선 터질 듯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1985년 극단 ‘목화’에서 연기를 시작해 30년을 맞은 배우 한명구(55)는 요즘 누구보다 바쁘다. 평일 오전에는 대학(극동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저녁이면 연극 ‘레드’(31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를 통해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에 빙의한다. 공연 후반이라 출연 회차는 줄었다지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로도 변신한다. 생전 처음 TV드라마에도 나온다. MBC 사극 ‘화정’에서 광해군이 총애하는 영수 정인홍 역을 맡았다.
“원래 겹쳐서 출연하지는 않는다. 꼬였다. ‘화정’에서 약속한 시간에 연락이 안 와서 ‘레드’를 선택했다. 로스코의 얘기가 맘에 들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화정’에서 연락이 왔다. 대본을 받자마자 혼자 연습에 들어갔다. 어쨌든 양쪽에 민폐다.”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극은 관객과의 접점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레드’는 계획하고 바라고 실패하는 현대인의 갈등요소를 잘 담고 있다. 이성과 감정, 관계에서 오는 비극, 또 외로움 등. 관객이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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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소도시에서 자란 그는 원래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다. “우습게 연극을 시작했다. 군인이 꿈이었던 터라 사관학교 시험을 치렀는데 떨어졌다. 당시 재수를 하면 군대를 가야 했는데 갑자기 교회 성극에 출연했을 때 목소리가 좋다는 선배의 칭찬이 떠올랐다. 무작정 연극학교 문을 두드렸다. 신세계더라. 연극은 곧 내 삶이 됐다.”
‘레드’서 화가로 나서는 만큼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색깔이 궁금했다. 즉각 답이 돌아왔다. “빨강이지 싶다. 하지만 생명력을 상징하는 로스코의 레드와는 다르다. 나는 격정이다. 열정과 격정의 상징이 빨강 아닌가. 바로 지금의 내 색깔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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