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CDS 뇌관` 건드렸다..폭발 충격은?

"그리스 크레딧이벤트"..CDS 보험지급 판정
지급보험금 31.6억불..새 국채도 문제될 수도
"흡수 가능한 규모"..시장신뢰 회복 득 될듯
  • 등록 2012-03-10 오전 8:41:30

    수정 2012-03-10 오전 11:30:54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그리스는 국채교환을 통해 대규모 부채를 탕감받는 동시에 2차 구제금융 지원이라는 선물을 받게 됐지만, 이는 결국 시장이 우려하던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이라는 뇌관을 건들고 말았다.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대비해 국채에 투자한 돈을 떼일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들어놓는 CDS 보험금이 한꺼번에 지급될 이번 사건이 금융시장과 금융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 `뇌관 터졌다`..CDS가 뭐길래

쉽게 말해서 CDS는 일종의 보험거래다. 채권에 투자했는데, 채권을 발행한 기관이 이자와 원금을 상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를 대비해 헤지차원에서 다른 금융기관과 체결하는 장외파생상품거래다.

예를 들어, 어떤 투자자 B가 A라는 국가나 기업 등이 발행한 채권에 투자했다고 하자. B는 A로부터 투자에 따른 이자를 지속적으로 받고 만기 때 원금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A가 파산하거나 이를 지급할 수 없는 크레딧(신용) 위기에 빠진다면 B는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를 대비해 다른 금융기관 C와 CDS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일종의 보험료인 프리미엄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되, A가 파산이나 디폴트를 당할 경우 C에게 채권을 넘겨주고 원금 등을 보험금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아래 그림 참조)

그렇다면 B는 어떤 경우에 이같은 보험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 A라는 채권 발행자가 파산하거나 디폴트 상황을 맞거나 대규모 채무 재조정에 나서는 등 소위 `크레딧 이벤트`가 생길 때, 당초 투자금을 되돌려 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해 보험금을 지급받게 된다.

▲ CDS 거래의 구조
  문제는 이 CDS 상품은 장외파생상품이라 거래소내에서 거래되는 장내상품처럼 규격화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제스왑파생상품협회(ISDA)에 속한 주요 금융기관 15곳이 위원회를 구성해 특정 사건이 크레딧 이벤트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정하게 된다.

◇ "그리스 상황, 크레딧 이벤트"

이번 사상 최대규모의 그리스 민간 채권단 손실탕감(채무 재조정)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그리스 국채관련 CDS 매수자들이 `우리가 약정했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가`하고 ISDA측에 문의했다.

그리스 정부와 민간 채권단 대표간의 합의처럼 국채교환 자체가 `자발성`에 기초한 것이라면 그리스가 국채 투자 이자와 원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크레딧 이벤트에 해당되지 않는다. 스스로 덜 받겠다고 약속한 것이니. 다만, 문제는 85% 정도의 채권단이 국채교환에 합의했는데도 그리스 정부는 집단행동조항(CACs)을 적용해 95% 채권자들에게 동일한 손실 탕감을 강제하기로 한 점이다.

만약 이렇게 강제로 손실 탕감 적용을 받는 채권자가 이를 거부해도 그리스 정부로부터 당초 투자한 국채에 해당하는 이자와 원금을 받을 수 없다. ISDA측이 "그리스 정부가 일부 국채교환에 찬성하지 않은 채권단까지 모두 손실 탕감을 일괄 적용하는 것은 일종의 크레딧 이벤트"라고 판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리스 국채에 투자하면서 혹시나 해서 CDS를 매수했던 투자자들은 CDS를 매도한 거래 상대방 금융기관으로부터 약정한 보험금을 챙길 수 있게 됐다.

◇ "보험금 31.6억불..연쇄 파장도"

과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와 리만브러더스 파산 때 발생한 CDS 보험금 지급사태가 금융시장 충격을 키웠듯이 이번에도 그리스 국채 CDS 지급에 따른 파장도 어느 정도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단 시장 영향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CDS 계약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를 봐야 한다. 현재 그리스 국채 CDS 규모는 700억달러에 이르지만, 4323계약인 순잔액 기준으로 보면 31억6000만달러(원화 3조5360억원)로 줄어든다. 리만 사태때의 52억달러보다 적고, 최근 1년새 절반수준으로 줄어든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는 19일로 예정된 보험금 지급액 산정이 어떻게 되느냐가 관건이다. 이날 ISDA도 "일단 이전 그리스 국채가 보험금 지급 대상이긴 하지만, 오는 12일 교환되는 새 국채도 디폴트 조항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민간 채권단이 57% 이상의 손실을 탕감한 뒤 국채를 교환할 경우 새로 받게 되는 그리스 국채의 금리가 대략 15%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금리가 높다면 투자자들은 그리스의 지급능력에 대해 또다시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더구나 이날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일시적으로 `제한적 디폴트`로 낮춘 피치사는 "새로 산정하게 될 그리스 국가신용등급도 낮은 정크본드 수준에 머물 수 있다"며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 "CDS 신뢰회복, 得이 클수도"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CDS 보험금 지급규모 자체가 크지 않고, ISDA가 크레딧 이벤트 상황을 정치적 해석없이 객관적으로 판단한 만큼 시장이 신뢰를 회복하는 등 오히려 득이 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이날 에반겔로스 베니젤로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의회에서 "전세계적으로 CDS 지급액이 50억유로도 안되기 때문에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며 "그리스와 유럽 경제규모 등을 감안할 때 이는 무시해도 될 수준"이라고 우려를 일축한 바 있다.

특히 CDS 보험금 지급으로 약간의 불안을 겪더라도 시장의 규율을 똑바로 세웠다는 점에서 향후 긍정적 영향을 기대하는 쪽도 만만치 않다. 만약 이달초 잠정 결론 때처럼 이번 사태를 "크레딧 이벤트가 아니다"라고 판정내렸을 경우 CDS시장은 붕괴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채에 투자해 돈을 떼일 판인데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헤지수단이 없는 투자자들은 앞으로 이탈리아나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국채를 외면하게 될 가능성도 높았을 것이다. 이는 유로존의 연쇄 위기가 될 수 있다. 앞서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도 ISDA의 잠정 결정에 대해 "파생상품 시장에도 위험한 선례를 남기게 됐다"고 비판한 바 있었다.

ING그룹의 알레한드로 지안산티 스트래티지스트는 "CDS는 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인 만큼 CDS 투자자들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이번 판정으로 CDS시장에서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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