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에게 단체 서명 강요…"대학에 실망"
" 담임 선생님이 우리반에서 서명란을 다 못 채우면 어차피 반장이 다른 곳에 가서라도 서명란을 채워야 하니 아이들에게 서명을 해주라고 했어요. 담임선생님도 위에서부터 하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거죠."
지난 5월 홍익대학교 부속 홍익여자고등학교 1학년 김지은(가명)양은 학급 반장이 내민 청원 서명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반장이 20여명 분량의 서명란을 채워 오도록 숙제처럼 할당을 받은 서명지에는 '우리는 지역발전을 위해 홍대부속 초·여·중·고의 성미산 이전을 찬성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명취지문에는 '성미산 생태보존을 위한 대책위원회의 학교 이전 반대는 주민의 이익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학교이전으로 인하여 자연 생태계 보전에 하등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등의 짧은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김양은 "반 아이들이 성미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명하라고 하니까 서명을 했다"며 "교육시설인 학교가 서명 취지문에 성미산 대책위원회를 이익집단처럼 묘사한 것이나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고 아이들에게 단체서명을 받는 것을 보고 대학이라는 곳에 꼭 가야하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해당 학교 측은 "학부모회와 학생회에서 단체서명을 준비한 것을 뿐, 찬성을 원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서명을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찬성서명 작업에는 직접적인 이전 대상도 아닌 홍익재단 산하 경성중학교에서도 학생과 학부모들이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16일 경성중학교 학부모회 주최로 열린 '자기주도적 학습방법 학부모연수'에서 교장이 직접 참석해 "성미산에 남녀공학 학교가 들어서면 우리 학생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니 좋지 않으냐"며 학부모들에게 성미산에 학교가 세워지는 것을 지원하고 찬성 서명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경성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 게시판에 남긴 글을 통해 "성미산이 내 아들과 내 딸을 건강하게 키워준 생활터전임이 분명하다"며 "홍익재단이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의 의사가 존중되는 윤리적 행정절차를 통해 일을 진행해달라"고 밝혔다.
한편 이와 같은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서명 강요에 대해 관할 서부교육청과 서울시 교육청은 다시는 이같은 일이 없도록 하라고 시정 명령을 내렸다.
◈ 학교 부지 이전…상업적 속내에 대한 우려
이 같은 홍익재단의 학교 이전 강행에 대해 성미산 대책위원회 측은 홍익재단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존중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홍익대학교 캠퍼스 옆에 노른자위 땅에 위치한 홍익초 여중고를 이전함으로써 남은 부지에 상업시설을 들여오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성미산 대책위원회 문치웅 정책팀장은 "현재 홍익대학교 정문에 세워진 홍문관의 경우 홍익대가 교육시설로 사용하겠다고 교육부의 승인을 얻었지만 실제로는 식당과 같은 상업시설 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재단 서열 2위인 홍익재단이 순수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홍익대 대학원 사진학과와 웹다자인학과 등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홍문관이 생기면서 학생 복지가 나아질 줄 알았지만 미대로 유명한 홍익대학교에 제대로된 실습실도 하나 없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현재 성미산 약 10만제곱미터(3만평)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홍익재단이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서울시와 한양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홍익재단은 소유한 성미산 부지 가운데 3분의 1에 홍익초 여중고를 이전하겠다고 나섰지만 다른 부지에 대한 이용계획 여부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성미산 학교 이전과 관련해 주민들과 재단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마포구 도시계획위원회는 건축계획 면적 최소화와, 이용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지역에 대한 관리 방안, 주민 산책로 확보 방안 마련 등 조건부로 홍익재단 측의 성미산 도시관리계획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홍익대학교 관계자는 "마포구 도시계획 위원회 자문 거쳐서 홍익 초중고등학교의 성미산 이전안이 서울시로 넘어 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학생들로부터 서명을 받은 것과 관련해서는 직접 인터뷰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 성미산은 지역공동체의 상징
성미산을 지키겠다며 나선 주민들은 서울시에 성미산을 자연생태공원으로 만들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미 '학교이전 반대와 생태공원화를 요구'하는 서명에 주민 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서울 마포구 성산1동에 위치한 자연숲 성미산. 주민들이 성미산 개발에 반대하며 성미산을 지켜온 것은 한 두해가 아니다.
사람과 마을 이경란 상임이사는 "지난 2001년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성미산을 기습 벌목하며 배수지를 만들려고 나섰을 때도 한양대 재단이 아파트를 세우겠다고 나섰을 때도 주민들은 연대모임을 구성해 성미산을 지켜냈다"며 "성미산이 각박한 도심 속 주민공동체와 대안생활문화 운동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상임이사는 이어 "성미산 마을에서는 최근 주민들이 자동차 나눠 타기 운동과 자전거이용 활성화 등을 통해 '저탄소 마을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며 "이는 서울시의 자연과 사람이 숨 뒤는 환경도시와도 일맥상통한다. 서울시가 신중한 검토와 결정을 내려달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는 성미산의 생태환경적 가치와 주민 생활문화적 활용가치, 서울시 정책과 일치하는 저탄소마을 만들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성미산이 자연숲 그대로 보존되는 생태공원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