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그래도 사랑…영원히 반복될 무대

-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물랑루즈' 팝 콘서트장 온 듯
‘현장성·무대’ 매력 잘 살린 쇼 뮤지컬
영화보다 다양한 팝음악 70여곡 압권
토니상 10관왕 빛나는 명불허전 명작
  • 등록 2023-02-27 오전 6:30:00

    수정 2023-02-27 오전 7:17:31

뮤지컬 ‘물랑루즈!’의 한 장면. (사진=CJ ENM)
[최여정 공연칼럼니스트] 뮤지컬 ‘물랑루즈’는 단연 기대작이었다. 토니상 10관왕이라는 수상소식도 들려왔다. 2001년 개봉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물랑루즈’가 20년이 지나 새삼 다시 뮤지컬로 소환된다니. 원작의 흥행을 믿고 무대화시킨 작품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중에도 어떤 작품들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개봉 당시 글로벌 박스오피스 2000억이 넘는 흥행 기록을 세웠던 영화의 몇 장면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카바레 ‘물랑루즈’의 스타 ‘사틴’이 공중그네를 타고 등장하며 부르는 ‘다이아몬드는 여자들의 베프’(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라는 가사 제목처럼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 속에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히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의 리즈시절을 박제해 놓았다. 그러니 뮤지컬 ‘물랑루즈’는 이런 원작 영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스크린이 빚어낸 강력한 판타지를 넘어서야 한다는 난제를 품고 태어났다.

최여정 칼럼니스트
한국 레플리카 버전(오리지널 제작진 참여)이 공연되고 있는 블루스퀘어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의심은 부서졌다. 짙은 노을이 내려앉는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풍차 날개가 손짓하는 ‘물랑루즈’의 은밀한 문 안으로 들어선 기분. 관능적인 음악 속에서 무용수들의 벗은 몸을 더욱 매혹적으로 비추는 조명 불빛과 네온싸인이 더욱 강렬해지면 오늘 밤 쇼가 시작된다. 예상했던 대로 영화 OST 중 최고의 히트곡 ‘레이디 마멀레이드’부터 관객을 압도하며 휘몰아친다.

뮤지컬 ’물랑루즈‘는 원작 영화나 드라마, 웹툰을 무대화 할 때 종종 잊곤 하는 ‘현장성’과 ‘무대’의 매력을 잘 살린 쇼 뮤지컬이다. 원작 영화의 드라마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음악은 영화보다 훨씬 다양한 곡을 골라 주크박스 뮤지컬의 형식을 택했다. 이 선곡 수준이 대단하다. 보통 뮤지컬의 한 넘버가 하나의 노래를 재료로 한다면, ‘물랑루즈’는 한 넘버에 다양한 음악을 섞어 넣는 ‘매시업’(mash-up)기법을 택한다.

1막 피날레 곡 ‘코끼리 사랑 메들리’에는 무려 스무 곡의 히트 팝 멜로디가 녹여져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지만 마치 한 곡처럼 매끈한 완결성까지 갖춘다.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함께 부르는 영화의 메인 멜로디 ‘Come what may’같은 대표곡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엘튼 존부터 비욘세, 아델, 리한나 등 세계적인 팝 가수들의 70여 곡이 화려한 무대와 함께 수놓아지니 팝 콘서트에 와 있는 듯하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예술과 낭만이 꽃피는 ‘벨 에포크’(belle epoque)시대의 파리를 배경으로 가난한 작곡가 ‘크리스티안’과 ‘물랑루즈’ 최고의 스타 ‘사틴’은 첫 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위태로운 사랑이 더욱 아름다운 것처럼 훼방꾼이 등장한다.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카바레를 후원하는 조건으로 사틴을 가지고 싶어하는 후원자 ‘몬로스’ 공작이다.

결국 폐병으로 죽고 마는 사틴과 크리스티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수없이 반복되는 클리셰(전형적 수법)일 뿐.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와 알프레도, 그리고 ‘라보엠’의 미미와 로돌프의 사랑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뜨겁게 분위기를 달구는 커튼콜이 끝나고 상기된 표정들로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 오래된 사랑 이야기는 앞으로도 영원히 반복되겠구나. 때론 연약하고 부서져도 우리가 살아가는 한, 그래도 사랑. 사틴과 크리스티안이 노래하는 것처럼 ‘영원히, 영원히 사랑해. 시간의 끝까지’.

뮤지컬 ‘물랑루즈!’의 한 장면. (사진=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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