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의원은 지난 3일 자신이 운영하는 소통채널 ‘청년의 꿈’에서 한 네티즌이 “정확한 형제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라고 묻자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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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네티즌은 지난 2017년 4월 홍 의원이 한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을 첨부하기도 했다.
이에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는 “홍 후보는 입버릇처럼 ‘우리 엄마는 무지렁이처럼 살았지만 내 인생의 멘토다. 내 마지막 꿈은 엄마같이 착한 사람이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홍 의원은 “자라면서 일곱 살 때 배다른 형님을 장가보내고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난 후 서로 왕래가 사실상 없었고 남처럼 지낸 아픈 가족사가 있다”며 “배다른 형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연결고리가 없어서 의절했다”고 덧붙였다.
경남 창녕군 남지면 남지리가 고향인 홍 의원은 가난 탓에 7살 무렵 창녕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는 등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이에 초등학교 때 6번이나 전학을 해야 했던 홍 의원은 초등학교를 마친 뒤 대구로 이사를 가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이는 이 후보가 지난해 12월 5일 전북 군산 공설시장을 찾아 “제 출신이 비천하다. 비천한 집안이라서 주변에 뒤지면 더러운 게 많이 나온다. 제가 태어난 걸 어떻게 하겠나. 그러나 진흙 속에서도 꽃은 피지 않느냐”라고 연설한 후 일각에서는 “감정팔이다”라고 지적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홍 의원은 “출생의 귀천으로 사람이 가려지는 세상이라면 그건 조선 시대 이야기”라며 “이 후보를 출생의 비천함으로 비난하거나, 변호사는 고용된 총잡이에 불과한데 살인범을 변호했다고 비난해선 안 된다. 그가 과연 그동안 품행, 행적, 태도 등이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있었는지를 따지는 게 올바른 비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