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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대표변호사] “이 사건에 대하여는 처분을 하지 아니한다.”
얼마 전 필자가 맡은 소년보호사건에서의 결정 주문이다. 소년법 제29조 제1항은 ‘소년부 판사는 심리 결과 보호처분을 할 수 없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하면 그 취지의 결정을 하고 이를 사건 본인과 보호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불처분 결정이라 부르는 이 결정은 사건을 심리해 본 결과 수사기관의 청구와 달리 보호소년에게 어떠한 처분도 내리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언뜻 이상하다. 분명히 무언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사건이 법원까지 왔을텐데 막상 법원은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는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사건은 이렇다. 한 중학교 교실에서 쉬는시간에 학생 A가 친구의 일명 ‘의자빼기’ 장난으로 인하여 자리에 앉으려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아프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을 A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버렸고 B를 제외한 반 친구들은 A를 달래주지 않았다.
그 사이에 친구 C가 A에게 다가가서 옆에 앉아 괜찮은지 묻다가 장난으로 바닥을 손으로 짚은 채 A의 허벅지와 허리 사이에 머리를 대고 눕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B가 “A는 지금 아파”라고 하기에 C는 겸연쩍어서 “나도 아파”라고 말하면서 행동을 멈추고 일어나 자기 자리로 갔다.
A의 엄마는 학교에 조사를 요청했고 경찰에 “의자를 뺀 아이, 넘어진 A의 손가락을 밟은 아이, 넘어진 A의 발을 밟은 아이, 넘어진 A를 베고 누우면서 자신이 아프다고 말한 아이를 처벌해달라”고 고소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A의 엄마는 A의 진술에 직접 관여하며 수정을 요청하기도 하였고 C의 머리를 대고 누운 행위는 “머리를 쾅 대고 누웠다”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경찰 조사 후에 A의 의자를 뺀 것을 인정한 B는 상해죄로, 머리를 대고 누웠다는 C는 폭행죄로 가정법원에 넘겨졌다. 해당 학생들은 모두 만 12세여서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가 없다. 소년보호사건으로 처분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C에게 불처분 결정을 내렸다.(B는 1호 보호처분을 받음) C에 대한 불처분 결정은 A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힘들었고 주변 목격자 친구들이 C는 머리를 쾅 대고 누운 것이 아니라 살며시 다리를 베고 누웠다고 진술했으며, 그러한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이 사실로 무언가 처분을 할 필요가 없으며 누가 봐도 이건 폭행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자, 지금까지 무슨 중요한 폭력사건 말하듯이 기술하였지만 독자들이 보기에는 어떨까. 이러한 행위들로 인해서 반 전체가 몇 번의 조사를 받고 경찰서에 5명의 아이가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으며 2명은 가정법원 판사 앞에서 재판까지 받았다. 꼭 그래야만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을까.
학교폭력예방법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소년법은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이들 스스로 화해하고 감내할 수 있는 작은 갈등이나 충돌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의 감정대립으로 인하여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가 무수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다툼에 어른이 개입하면서 사안의 본질은 사라진다. 어른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하여야 하며 어른이 개입하더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화해시키고 피해를 회복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어른이 도와야 비로소 성숙한 사회가 확립될 수 있다. 아이들도 그러한 어른을 보면서 배우고 자라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커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 다툼이 어른 싸움이 되면 정작 상처를 받는 것은 아이들임을 새겨야 할 것이다.
한필운 변호사 이력
△인천지방변호사회 상임이사 △한국소비자원 비상임 조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