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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뱅크’를 노리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물밑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먼저 칼을 빼든 것은 신한이다. 서울시금고라는 두둑한 곳간을 바탕으로 국민은행 안방에 십자포화를 날렸다. 일격을 당한 국민은행은 맞불 대신 조용히 칼을 가는 분위기다.
9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올 들어 원화대출이 8조7211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출이 5조~6조원 정도 늘어난 우리와 하나은행은 물론 1조867억원 증가하는데 그친 라이벌 국민은행과 비교해 8배가량 많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신한은행이 공격적으로 대출을 늘린 배경에는 ‘서울시금고 유치’ 영향이 크다는 평가가 많다. 신한은행은 한 해 예산 32조원에 달하는 서울시의 금고은행으로 선정되면서 올해부터 4년간 막대한 규모의 관리 예산과 기금을 운영 중이다. 자금이 들락날락하더라도 평잔 기준으로 3조~4조원은 통장에 항상 남아 신한이 이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부수적으로 1만8000명이 넘는 서울시 공무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영업도 가능해졌다. 실제 신한은행은 이자 부담이 적은 요구불성 예금을 3조원 가까이 끌어모아 다른 은행과 격차를 보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예년보다 일찍 인사를 마무리 짓고 연초부터 영업을 강화한 효과”라면서 “포용과 생산적 금융이라는 정부 정책기조에 부응해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한으로서는 서울시에 약정한 이자를 주려면 거의 원가수준이라도 대출을 일으키는 게 낫다”며 “이 자금으로 예대율 규제로 운신의 폭이 줄어든 국민은행의 빈틈을 치고 들어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금융당국은 내년부터 예대율 규제를 조정해 가계대출은 15%를 가중하는 대신 기업대출은 85%만 반영하기로 했다. 가계대출은 줄이고 기업대출은 늘리는 쪽으로 유도하려는 취지다. 국민은행처럼 가계대출 비중이 큰 은행은 대출을 줄이거나 예금을 늘려야 하는 부담이 크다.
신한의 선제공격을 받은 국민은행은 과거처럼 맞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금리 소모전을 해봐야 남는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경기가 둔화하는 시점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늘렸다가 부실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수익성과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 기조가 반영되며 대출자산이 1조원 가량 늘어나는데 그쳤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에서는 국민은행이 하반기 상황에 따라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월급통장을 비롯해 저원가성 예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고 리딩뱅크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작년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조2243억원, 신한은 2조2790억원으로 불과 500억원 차이에 불과했다. 또 대출이 평가와 직결되는 일선 영업점에서는 보수적 대출기조에 불만의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의 사업 구조는 기본적으로 끌어모은 돈을 대출해 수익을 올리는 예대마진에 의존하는데 대출 자산이 늘수록 수익이 확대되는 구조”라며 “연말 성과를 평가받는 시점이 다가올수록 경쟁이 더 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