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중 아이 낳으면 한부모가정"…동거가 죄인가요?

동거 부정적 시선이나 편견 경험 51%
정부지원 서비스 혜택서 차별 경험 45.1%
  • 등록 2018-11-24 오전 2:00:00

    수정 2018-11-24 오전 2:00:00

진선미(가운데) 여성가족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열린 ‘다양한 가족(동거가족) 간담회’에 참석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겪는 법·제도적 차별과 사회적 편견 개선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여성가족부)
[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동거한지 6년째인데 아직 부모님은 제가 혼자사는 것으로 알고 계세요. 부모님이 집에 오신다고 하면 같이 사는 친구 짐을 모두 캐리어에 담아서 숨겨두고 친구는 나가있죠. 죄 지은 사람처럼 내가 이래야하나 자괴감이 많이 들어요.”(A씨·여)

“동거한지 12년 됐습니다. 작년에 결혼식을 했는데 결혼식 하기 전까지 아내는 동거한다고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어요.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 존재에 대해서 설명하기 난감해하는 상황이 자꾸 발생하면서 형식적으로 작년에 식을 올렸습니다. 여전히 혼인신고는 안하고 있어요.”(B씨·남)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소재 한 식당에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만난 동거가족은 그동안 겪었던 고충과 사회적 편견으로 받았던 상처를 털어놨다.

“동거가 죄는 아닌데 엄마한테도 말은 못하죠”

이들이 공통적으로 털어놓은 고충은 ‘사회적 편견’이었다. 남편과 사별한 김복남씨는 이후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권정수씨와 11년째 동거중이다. 김 씨는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남자에게 뭘 바라고 저러는 것 아니냐’라고 수군거리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면서 “동거를 하면서 우울증도 없어졌고 좋은 점이 많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싶다”고 눈물을 보였다.

B씨는 “처음 동거를 시작하면서 주변에 알렸더니 남자들은 ‘좋겠네’라고 하더라. 나에게는 굉장히 무거운 고민거리였는데 단순히 자유로운 성생활을 부러워하는 가벼운 반응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면서 “그나마 나는 남자라 주변 시선에서 자유로운 편이지만 여자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동거한다는 말을 꺼낼 수조차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A씨 역시 “친척들은 내가 혼자 살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애인이 있다고 하니 ‘집에 기둥서방 들인 것 아냐?’라고 농담을 던진다. 그런 말을 들으면 모멸감이 느껴진다”면서 “엄마에게라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딸이 동거하는데 엄마는 뭐하는거냐’라고 비난할까봐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동거 7년차인 C씨(여)는 “동거한다고 하면 주변인들이 ‘어떻게 남자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여자를 동거상태로 두느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서 “요양보호사로 잠깐 일할 때 어르신들이 결혼 안했다고 하면 불안해해서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가 무책임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주변 시선이 힘들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동거경험자(253명) 중 부정적 시선이나 편견 등 차별을 경험한 비율은 51%, 정부의 지원이나 서비스 혜택 등에서 차별을 경험한 비율은 45.1%로 나타났다.

“동거중 출산하면 한부모 가정”

동거가족들은 사회적인 인식변화를 위해서는 정부에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는 동거가족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동거 중 아이를 낳으면 한부모 가족이 될 수밖에 없어 온전하게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동거 7년째인 방송인 허수경씨는 “동거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자녀”라면서 “동거가족이 자녀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시작부터 괴로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내 딸은 엄마와 아빠가 다 있는 상황이지만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니 이를 증빙하기 위한 절차를 거치면서 고통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허 씨는 현재 11살 된 딸을 키우고 있다.

동거 10개월만에 딸을 낳으면서 혼인신고를 하게 됐다는 이라나씨는 “동거를 하면서 제도권 밖에 있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 보호받기를 선택했다”면서 “아이를 양육하면서 혼인제도 안으로 들어가면 탄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어려운 부분이 생기면서 이 나라가 만든 가족제도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법적으로 동거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데 대한 불안감도 상당했다. 진선미 장관은 이와 관련해 본인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진 장관 역시 2016년 혼인신고를 하기 전까지 동거상태였다.

진 장관은 “동거 중에 수술을 해야하는 일이 있었는데 동거인은 법적으로 보호자가 되 수 없어 어머니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장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인정이 되지 않는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진 장관은 지난 2014년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동거가족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박상규 기자는 “이전 직장에서 퇴사 전에 신혼여행이 아닌 동거여행을 보내달라고 농담식으로 이야기했는데 한국에서는 노동법상 ‘이성애자’와의 ‘결혼’만 보장받을 수 있다”면서 “동거 커플도 결혼하는 커플처럼 축하받을 수 있고 휴가도 주는 사회적, 제도적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 장관은 간담회를 마치면서 “삶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것인가 선택할 권리를 주고 이들의 선택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면서 “결혼 안하더라도 아이를 낳고 싶어하고 좋은 사람과 같이 살고 싶어하고 하는 생각을 제도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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