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는 국제정세 때문에 가장 최근 장인 14일 비상했다. 미국 서부 텍사스 중질류 8월 인도분이 한때 1배럴당 78달러(시간외) 선을 넘었다. 영국 북해산 브랜트유 값도 77달러 선에 육박했다. 한국 석유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유 현물값이 사상 처음으로 70달러를 넘었다.
사정이 이쯤되자, 국제 석유 전문가들은 그동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1배럴당 100달러’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놓고 있다.
A. G 에드워즈의 석유 애널리스트인 브루스 라니는 최근 CNN머니와 인터뷰에서 “중요한 사태가 한 가지만 더 발생하면, 기름 값 100달러는 전혀 비현실적인 게 아니다”고 말했다.
◇ 중동은 지금 '사실상' 전쟁 중
현재 국제정치 지형에서 ‘중요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은 단연 중동지역이다. 이 지역은 지금 사실상 전쟁 중이다.
지난주 수요일 헤즈볼라가 레바논 국경에서 이스라엘군 8명을 사살하고, 2명을 붙잡으면서 촉발된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세지고 있다. 레바논 공격 나흘째인 15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중심지를 처음으로 폭격했다. 주요 타겟은 베이루트 중심가에 위치한 항만시설이었다.
또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남부지역과 동부 도시인 발베크의 헤즈볼라 관련 시설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고, 베이루트-다마스쿠스 연결 고속도로 상에 남아 있던 유일한 교량 한 곳도 이날 파괴했다. 이 공격으로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던 민간인 3명이 사망했다.
이날 최악의 인명피해는 이스라엘과 접경한 레바논 마을 마르와힌에서 발생했다. 이스라엘 무장헬기는 피난길에 오른 민간인 차량 2대에 미사일을 발사해 어린이 9명을 포함해 18명을 죽였다.
이슬람 무장세력인 헤즈볼라는 14일 중거리 미사일로 레바논 연안에서 작전 중이던 이스라엘 전함을 공격한데 이어 15일 레바논 남부 국경에서 남쪽으로 35㎞ 떨어진 이스라엘의 티베리아스에 로켓 공격을 가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국경지대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지중해 연안 도시인 티베리아스가 공격받은 것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처음이어서 이스라엘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 확전의 도화선에 불만 붙으면 ‘5차 중동전’
지금 중동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맞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 형국이다. 먼저 헤즈볼라가 전면전을 선언했고, 시리아는 헤즈볼라와 레바논을 지지하고 나섰다. 시리아와 함께 이스라엘에 의해 테러 배후로 지목된 이란도 시라아가 공격을 당할 경우 보복할 것이라고 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란의 대응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란이 핵 문제와 관련해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헤즈볼라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나라로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이란이 최정예 혁명수비대원 100여 명을 파견해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란 대통령도 되받아쳤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시오니스트(이스라엘)는 자신들이 히틀러의 희생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히틀러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처럼 양쪽이 설전을 주고 받는 와중에 세계 5대 산유국인 이란이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들 경우 현재 사태가 5차 중동전으로 변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란이 석유수출을 중단하거나, 선박을 격침시켜 수심이 낮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나설 경우 세계는 1973년과 1979년에 이어 역사책에 ‘2006년 석유파동’으로 기록될 수 있는 사건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G8 정상들, 일단 이스라엘 비난..구체적인 해결방안은?
러시아 상트페테스부르그에서 정상회담을 진행 중인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 G8 정상들은 15일 일단 “이스라엘이 납치된 자국 군인 송환을 넘어선 ‘더 큰’ 목표를 위해 공격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의 과잉 대응을 비난했다,
이는 G8 정상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두고 미국과 러시아가 상당한 이견을 갖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납치와 테러’에 무게 중심으로 두고 있는 반면, 푸틴은 이스라엘의 과잉 보복이 문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다행히 직접적인 피해 당사국인 레바논이 이웃 이슬람 국가들에 지원을 요청하기보다는 휴전을 호소하고 나서 확전 가능성은 조금이나마 낮아진 느낌이다. 포우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수상은 16일 오전 아주 감성적인 어조로 이스라엘에 대해 휴전을 호소했다. 그는 UN이 직접 개입해 휴전을 중재하고 감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 사태가 전면전도 해결도 아닌 국면으로 진입할 수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여러 차례 공격했지만 중동전으로 비화한 경우가 드물었다는 점에 비춰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5차 중동전으로 확산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치고 들어가 2000년까지 일부 지역을 점령했지만, 이스라-중동의 전면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 사태의 중요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이란이 석유수출 중단이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같은 카드를 꺼내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대외관계 연구소의 중동 전문가 스티븐 쿡은 “이란은 자신의 지분가치를 높일 수 있는 카드가 많다”며 “굳이 호르무즈 해협에 배를 가라앉혀 유조선 항해를 막는 카드를 꺼내들지 않을 것”이라고 점쳤다.
그래서 투자은행 프리차드 캐피털의 에너지 애널리스트인 닐 딩먼같은 사람은 이해 당사국들이 밀고 당기는 과정이 상당 기간 지속되는 바람에 “전면전 수준은 아니지만 폭력사태가 지속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이를 근거로 기름 값이 앞으로 몇 개월 동안 80~85달러 선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중동지역의 폭력사태가 해결도 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허리케인이 미국 남부 지역을 강타하는 사건이 또 다른 ‘중요한 사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래저래 국제 유가는 2006년 여름 역사적인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