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CEO 자본주의의 몰락

  • 등록 2002-10-01 오전 8:23:23

    수정 2002-10-01 오전 8:23:23

[뉴욕=edaily 이의철특파원] 미국은 영웅을 잘 만들어내는 사회다. 9.11과 같은 "특수상황"에선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에서도 곧잘 영웅을 만들어낸다. 사회분위기가 그렇다. 헌혈을 촉구하는 광고판의 문구조차 "당신에게 영웅이 될 기회를 주겠다"는 식이다. 초등학생들도 학교 수업시간에 "나의 영웅을 그림으로 표현하라"와 같은 과제를 받는다.

90년 이후 장기 호황을 구가해 오던 미국 자본주의에서 최대 영웅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었다. 적어도 과거 10여년 동안 그랬다. 숱한 CEO들이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잭 웰치 전 GE회장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밖에도 엔론의 전 회장 케네스 레이, 월드컴 전 CEO인 버나드 에버스 등도 한 때 영웅으로 취급받던 CEO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예에서 알수 있듯 이같은 "영웅 신화"는 점차 무너져내리고 있다.

데니스 코졸로스키. 타이코의 전CEO다. 탈세와 공금 횡령혐의로 기소됐다가 최근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혼한 전부인이 보석금 1000만달러(약 120억원)를 대납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 또 화제가 됐다. 코졸로스키 본인의 재산은 횡령혐의 때문에 현재 모두 동결돼 있다. "이혼한 전 부인의 돈은 그럼 깨끗한가"를 놓고 잠깐 청문회까지 벌어졌지만 법원은 결국 보석금으로 인정했다. 코졸르스키의 자존심은 구겨졌지만 미국 비지니스업계에 새로운 교훈을 주기는 했다. "이혼을 하더라도 전 부인에게 잘해줄 것."

마사 스튜어트. 살림의 여왕으로 칭송받는 여성 CEO다. 자신의 이름을 딴 마사스튜어트옴니미디어리빙의 회장으로 미국 가정주부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경영자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현재 임클론 주식 4000여주에 대한 내부자거래혐의로 미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TV와 잡지에서 언제나 "가정의 행복이 최고"라고 예쁘게 미소짓던 마사 스튜어트는 그러나 실제로 전남편(이혼했다)과 종업원들에게는 "표독한 아내", "정떨어지는 사장"이었다고 해서 다시 한번 구설에 올랐다.

비즈니스업계의 대표적인 영웅을 꼽는다면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전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9년 연속 두자리수 이익성장률을 기록한 GE의 성장 신화 뒤엔 "경영의 신"으로까지 일컬어지던 젝 웰치 전 회장이 있다. 그러나 그런 잭 웰치도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퇴직후의 각종 특혜가 문제가 돼 마침내 전용비행기 전용사무실 등 연간 수억달러 상당의 퇴직후 특전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잭 웰치 전회장 뿐만이 아니다. 내년 3월 퇴직할 예정인 IBM의 루이스 거스너 CEO도 20여년 동안 경영자문료로 매년 200만달러와 사무실 아파트 임대료, 전용기 사용료, 골프장 회원권 등을 받기로 돼 있다. 이외에도 AOL타임워너의 제럴드 레빈, 델타항공의 로널드 엘빈, 버라이즌의 찰스 리 등 전직 CEO들이 회사와의 계약에 따라 연간 수십만달러의 특전을 받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가 잘 나가던 때는 경영자에 대한 과도한 보상 따위는 아예 이슈조차 안됐다. 10이라는 이익을 내던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100이라는 이익을 냈다면, 그리고 이같은 이익이 CEO의 탁월한 능력에서 나왔다면, 늘어난 이익의 절반을 준들 주주 입장에선 아까울 게 없다. 아니 보다 많이 주는 것이 "적정하고 공정한 보상"이다. 거액의 연봉과 보너스, 연봉의 몇 배에 달하는 스톡옵션, 그외 각종 특전, 현직에 있을 때의 특전도 모자라 퇴직후의 각종 퇴직 특전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이익이 늘어난 결정적인 이유가 딴 데 있다면? 예를 들어 해당 산업의 호황기에 운좋게 CEO를 맡아 그다지 힘 안들이고 이익을 많이 낼 수 있었다면? 아니면 엔론 이후 월가를 뒤흔들었던 회계스캔들 마냥 실제 이익을 낸 것이 아니고 "그저 이익을 많이 내는 것처럼" 보이기만 했다면?(분식회계가 이런 식이다)

미국 자본주의는 이제 영웅몰락의 시기를 맞으면서 이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컨퍼런스보드가 미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내놓은 방안을 보면 이같은 이슈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바로 "경영자의 과도한 보상에 대한 견제장치"다.

컨퍼런스보드는 이사회와 독립적인 "보상위원회"를 두고 CEO를 비롯한 경영진의 연봉과 보너스, 그리고 여타 보상문제들을 다룰 것을 권고한다. 특히 주가와 같은 단기적인 성과 외에 장기적인 성과도 경영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로 삼을 것, CEO의 성과를 여타 변수 예를 들어 해당 업종이나 산업의 성과와 구별할 것 등도 권고하고 있다.

CEO를 영웅으로 만들었던 미국식 "CEO자본주의"의 최대 피해자는 역시 주주들이다. CEO들은 그간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보다는 제 배를 불리기에 급급했다는 것이 주주들의 항변이다. 말하자면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겼다"는 식이다. 그러나 CEO들에게 그런 권한을 이양해준 것은 바로 "주주"들 자신이다. 스스로 발등을 찍은 것이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랴. 남은 생선이나마 지금부터라도 잘 지키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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