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추격 속도내는 美…'초격차' 기술로 격차 벌릴 때"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 (사진=방인권 기자]

[이규복 반도체공학회 회장 겸 한국전자기술연구원 부원장] 생성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양자컴퓨터 등 AI를 활용한 새 산업군의 등장으로 대용량 데이터 처리와 고속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주목받고 있다. AI가 융합된 전 산업에 높은 파급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만큼 향후 메모리반도체 시장 주도권 다툼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진 국내 기업이 앞서 가는 형국이다.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가 4세대 제품(HBM3) 상용화에 연달아 성공하면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시장점유율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이 내년부터 5세대 제품(HBM3E)을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내년께 5세대 제품 양산이 예측되는 국내 기업들과 비슷한 일정이다. 메모리 시장에서의 기술적 우위가 역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HBM은 D램과 달리 주문·수주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져 고객사와의 호흡이 중요한데 마이크론은 빅테크를 위시한 주요 AI 수요처와 지리적·문화적으로 가까워 유리한 측면이 있다. 또 초기 단계인 만큼 새로운 표준기술의 등장이 산업 판도를 흔들 수 있어 후발주자의 립프로깅(Leapfrogging·다음 단계로 바로 점프하는 건너뜀)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국내 기업들의 초격차 대응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 먼저 산학연 협력을 통해 3차원 수직적층, 패키징 등 핵심기술을 고도화하고 HBM-PIM(Processing In Memory) 등 차세대 기술을 선점해 경쟁사가 앞서 가려는 길목을 차단해야 한다. HBM 기술은 자체 공정 고도화를 통해 기술우위를 확보했던 D램 산업과 다르다. 한 기업이 모든 걸 다 할 수 없는 만큼 생태계 차원의 기술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둘째 초일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가 스택형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해 메모리 1등으로 올라선 배경에도 진대제·권오현 박사 등 일류 연구진들의 연구와 제언이 있었다.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도 국내외 대학과 협력해 뛰어난 인재를 키우고 중용해야 한다.

셋째 글로벌 파트너십 및 마더 팩토리(제품 개발과 제조의 중심 공장) 역량 강화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부분 해외에 있는 AI 수요와 자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에 대응하기 위해선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가 필수다. 한편으론 해외에서 확보한 기술 역량을 국내 마더 팩토리로 환류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새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등장은 국내 기업들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그러나 과실이 큰 만큼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산학연 협력 생태계 조성, 인재 양성, 과학기술 외교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