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왜 하세요?

[케이팝 제너레이션] 제작기 ⑤ 김윤하 스토리 프로듀서
1화 '덕질' 비하인드스토리
  • 등록 2023-03-14 오전 6:32:43

    수정 2023-03-14 오전 8:28:29

‘케이팝 제너레이션’ 1화 ‘덕질’
[이데일리 고규대 기자]케이팝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한 티빙(tving) ‘케이팝 제너레이션’이 파트1를 마치고 오는 3월16일 파트2를 준비하고 있다. 케이팝 산업 발전의 맥락을 짚은 팩추얼 엔터테인먼트로 주목받은 ‘케이팝 제너레이션’의 제작기를 6회에 걸쳐 들어봤다.<편집자 주>

케이팝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반복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케이팝 왜 하세요?

질문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행위의 본질적 이유가 진심으로 궁금해 묻는 ‘왜’와 딱히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 자주 고통스러워 보이는 이들 앞에서 문득 한숨처럼 뱉게 되는 ‘왜’다. 힘들고 괴롭고 지친다면 쿨하게 이별을 고하고 돌아서면 될 것을, 케이팝을 만들고 행하고 추앙하는 사람들은 때마다 죽지도 않고 돌아와 다시 케이팝 앞에 서서 울고 웃는다.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 제작에 합류하게 된 데에는 그 ‘왜’에 대한 답변을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컸다. 책상 앞에서 추측하고 넘겨짚는 게 아닌, 사람들의 입으로 직접 그 답을 듣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의 첫 화를 ‘덕질’로 시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개인적으로 제작에 합류하기 전에 결정되어 있던 상황이라 이런 말을 하긴 좀 쑥스럽지만, 아마 다른 배치였다면 생떼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케이팝 제너레이션’에서 다른 팬 문화의 하나 ‘덕질’
팬은 케이팝에 드리운 물음표 가운데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의아한 존재다. 팬은 케이팝을 하는 순간부터 무언가 몰두하면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부와 명예의 정반대에 선다. 덕질의 시작과 함께 생각보다 얇은 내 지갑 두께에 대한 차가운 인식과 동시에 갖은 멸칭으로 불리는 것은 물론 ‘너는 몇 살인데 아직도 아이돌이나 쫓아다니냐?’는 영양가 없는 잔소리에 벌 떼처럼 휩싸인다. 그런데도 이들은 케이팝을 ‘한다’.

팬들은 말했다. 케이팝을 이야기할 때 관용어구처럼 따라오는 국적과 인종, 성별을 초월한 이들이었다. 사랑을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 않냐고, 덕질은 힘든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행복의 덮어쓰기라고, 사람이 성숙해 가는 과정이 아니냐고, 다시 시련이 찾아온다 해도 계속 덕질을 하며 내 삶의 새로운 챕터를 써갈 거라고. 덕질을 통해 단순한 동경을 넘어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멀게는 자신의 진로까지 바꾼 이들도 말했다. 케이팝이라는 매개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기 고양감을 느끼는 이 모든 경험이 너무 소중하다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케이팝을 하는 개인의 삶으로 수렴하는 작고 빛나는 조각들 속에, 그렇다면 이제는 그 조각을 한 점으로 모으는 사람들에 대한 대답이 궁금했다. 아티스트 인터뷰는 다큐멘터리의 전반적인 흐름을 잡는 일과 함께 잘 해내고 싶은 가장 큰 개인 미션이었다. 밤낮으로 케이팝을 이야기하는 평론가라고 해도 이렇게 다양한 경력의 케이팝 아티스트에게 직접 장시간 동안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심지어 솔직한 답을 구한다는 게 결코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한 사랑,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우연한 기회 등 각자의 이유로 케이팝을 하게 된 이들이 ‘왜’라는 질문 앞에 내놓은 대답 속 가장 진하게 어린 건 다름 아닌 책임감이었다. 나를 선택해준, 나를 지원하고 지지해주는, 나아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준 마음에 대한 책임감. 말 한마디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오늘과 내일이 걸린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단어였다. 한편 그런 그들을 지원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스태프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느끼는 보람을 말했다. 뮤직비디오 세트를 수십 번 수정하고 일주일에 새 무대 의상만 대여섯 벌을 만들며 농담처럼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면서도 이들은 여전히 케이팝이 좋고 앞으로도 계속 케이팝을 하겠다고 말했다. 화사의 말처럼 ‘태생적으로 이 일을 사랑하게끔 태어난 사람들’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케이팝 제너레이션’의 한 장면.
‘케이팝 제너레이션’을 제작하면서 수 없이 던진 ‘왜’로 그래서 명쾌한 답이 나왔냐고 묻는다면,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는 좀 맥 빠지는 대답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오히려 질문을 던질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매 회차를 마무리하며 A는 B라는 사이다 정의보다는 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지거나 인류애 같은 치트키를 사용해 버리는, 보기에 따라 다소 비겁해 보이는 수를 다수 택한 것도 사실이다.

조금 의기소침해지려는 찰나, 문득 어쩌면 케이팝을 왜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과가 아닌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이뤄지는 과정, 사람과 사랑을 통해 성숙해가는 과정, 행복과 성장이 있는 나만의 커뮤니티를 찾는 과정, 좋아하는 마음이 생의 원동력으로 바뀌는 과정. ‘케이팝 제너레이션’을 만들며 만난 건 결국 때로는 빛나고 때로는 처절한 과정들이었다. 그 모두를 8회차의 영상에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의 애정 어리고 치밀한 나열 속에서 ‘케이팝 제너레이션’이 지금 케이팝을 하는, 앞으로도 쉽게 그만둘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길잡이가 되었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다시, 2부를 시작한다.

김윤하 스토리 프로듀서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케이팝 제너레이션’ 스토리 프로듀서

①‘케이팝 제너레이션’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차우진 스토리 총괄 프로듀서

②보이그룹은 언제까지 아이돌이야? / 김선형 PD·머쉬룸 컴퍼니 대표

③케이팝 뒤에 사람 있어요 / 하박국 스토리 프로듀서

④케이팝, 구멍이 뚫린 상자 / 이예지 머쉬룸 컴퍼니 대표

⑤“케이팝, 왜 하세요?” / 김윤하 스토리 프로듀서

⑥그래서, 케이팝은 어떻게 되나요? / 임홍재 제작 책임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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