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후의 부모는 신경섬유종 합병증으로 시각 장애나 척추측만, 경련 등이 추가로 나타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치의인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의학유전학센터 교수가 신경섬유종 신약이 개발됐다는 소식과 함께 임상시험 참여를 제안했다. 현재까지 2년간 꾸준히 약물을 복용해 온 지후는 기적처럼 얼굴의 종양 크기가 많이 줄어들며 아이다운 웃음과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다.
신경섬유종은 유전성 질환으로 인해 신경 부위에 종양이 증식하는 질환이다. 얼굴처럼 겉으로 잘 드러나는 부위에 종양이 생기면 환자는 외모에 대해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대인 관계에서도 위축되기 쉽다. 신경섬유종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중 신경섬유종 1형이 전체 신경섬유종의 90%를 차지한다. 전 세계적으로 신생아 3000명당 1명꼴로 발생할 만큼 신경피부질환 중 가장 흔하다.
원인은 종양 억제 단백질의 생산을 조절하는 NF1 유전자의 결손으로 종양이 신경을 따라 전신에 발생할 수 있다. 환자의 절반 정도는 가족력 없이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다. 어릴 때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가 들수록 증상이 심해진다. 아직 신경섬유종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방법이 없다보니 환자들은 증상에 따라 약물을 복용하거나 수술로 종양을 절제하는 등 대증적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의학유전학센터 교수는 “신경섬유종 1형은 종양 발생에 따라 합병증도 계속 따라오기 때문에 평생 치료해야 한다.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 개선이 필요한 질환”이라고 강조했다.
◇ 환자 50%는 가족력 없어도 발생
서울아산병원은 신경섬유종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2017년 5월 국내 최초로 신경섬유종 클리닉을 개설했다. 신경섬유종은 질환의 특성상 여러 인체 장기를 침범하므로 적절한 치료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협진이 필요하다.
◇ “치료제 셀루메티닙 급여 적용 이뤄져야”
몇 년 전 다국적 제약사에 의해 만 2세 이상 소아 신경섬유종 1형 환자를 대상으로 한 셀루메티닙(selumetinib) 성분의 치료제가 처음 개발됐으며 작년 초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희귀의약품과 혁신치료제로 승인을 받았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섬유종 클리닉도 2019년 6월부터 셀루메티닙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대상자는 총상신경섬유종이 있으며 수술이 불가능한 신경섬유종 1형 환자다. 총상신경섬유종은 신경섬유종 1형 환자의 약 30%를 차지하며 악성화, 통증, 주변 조직 파괴 위험이 매우 높은 종양이다. 외모 변화와 통증, 운동기능 저하, 시력 손상 등을 동반할 수 있다. 수술만이 유일한 해법이지만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기가 어렵고 혈관 및 신경 손상 위험이 높아 수술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환자가 많았다.
초기에 등록한 환자들의 경우 현재까지 약 2년 동안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대부분 종양 크기가 20% 이상 현저히 줄어들었고 통증 소실, 근력 향상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질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총 투여 기간은 2년이지만 임상시험을 진행한 지 2년이 되는 시점에 환자에게 임상적인 유용성이 도출된 경우에는 투여 기간을 연장해 치료를 지속하고 있다. 셀루메티닙의 우수한 효과가 확인되면서 도입의 시급성을 인정받아 국내 최초로 신속심사대상 약제로 지정됐고 올해 5월 마침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았다. 적용 대상자는 총상신경섬유종을 동반하며 수술이 불가능한 만 3세 이상의 신경섬유종 1형 소아 환자다.
이번 임상시험의 책임자인 이범희 교수는 “셀루메티닙은 신경섬유종 종양 크기 감소에 효과를 보인 유일한 약제로 임상연구에 참여한 많은 환자들이 셀루메티닙을 통해 삶의 질 개선을 경험하고 있다”며 “다만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안 되다보니 2년간 꾸준히 치료를 받으려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속히 급여 적용이 이뤄져 많은 신경섬유종 환자들이 더 이상 질병으로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며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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