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오픈마켓(열린장터)으로 시작한 11번가는 한때 업계 1위를 넘보기도 했으나 현재는 4위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기준 거래액은 네이버 27조원(17%), 쿠팡 21조원(13%), 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 20조원(12%), 11번가 10조원(6%) 순이다. 상위권 업체들과 점유율 격차가 커 존재감 면에선 더 낮은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모기업인 SK텔레콤은 지난해 11월 이런 세간의 시선을 반전시킬 묘수로 11번가와 아마존 간 협력방안을 제시했다. 11번가는 아홉 달에 걸친 오랜 준비 끝에 이달 31일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오픈하면서 마침내 결실을 이룬다.
론칭 10주년인 2018년 SK플래닛에서 분리·독립한 11번가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호(사진) 11번가 초대 사장에게 늘 따라붙은 수식어 역시 한국판 아마존을 만들 적임자였다. 이 사장이 취임 일성으로 “11번가는 쇼핑정보 취득, 상품 검색, 구매 등 쇼핑과 관련한 모든 것을 제공하고 판매하는 관문인 ‘커머스 포털’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기 때문이다. 다분히 ‘아마조니피케이션(Amazonification)’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미국인들은 쇼핑 검색을 위해 포털 구글보다 아마존을 먼저 찾는다. 아마존은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다’는 캐치프레이즈대로 ‘없는 게 없는’ 상품 구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11번가 또한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소개하면서 “디지털, 패션, 뷰티, 리빙, 도서까지 국내 해외직구족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천만 개의 상품을 판매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지난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해외직구와 차이를 묻자 “압도적 스케일의 상품 수”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쿠팡의 로켓직구 상품 수는 700만개 수준으로 알려졌다.
해외직구의 걸림돌로 꼽히는 언어의 장벽도 허물었다. 상품 정보는 물론 해외 고객들의 리뷰까지 한국어로 번역해 보여준다. 판매가격도 환율을 반영해 원화로 노출한다. 11번가에서 구매한 아마존 상품에 대해 주문, 결제, 배송, 반품, 환불 등 모든 고객문의를 도맡아 처리하는 전담 고객센터도 운영한다. 전 과정은 한국어로 상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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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회비 13달러(1만5000원) 연회비 119달러(약 13만9000원)의 아마존 프라임(유료 멤버십), 아마존닷컴이 지난해 11월 시행한 99달러(약 11만원) 이상 한국 무료배송 프로모션과 견주면 ‘혜자’스럽다(알차다). 국제 화물 운송비를 고려하면 적자를 감수하는 구조이어서 향후 무료배송 기준은 변경될 수 있다.
국내 해외직구 시장 규모는 지난해 4조1094억원에서 올해 5조원~6조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줄면서 해외직구 수요는 확연히 늘어나는 추세다. 앞으로도 해외직구 시장의 성장성이 무궁무진한 만큼, 아마존을 등에 업고 ‘해외직구=11번가’라는 인식을 심어 경쟁사들과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겠다는 생각이다. 이 사장은 “11번가는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 오픈을 시작으로 국내 해외직구 시장의 혁신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는 애써 평가절하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쇼핑의 제왕’ 아마존과 동맹이라는 상징성을 무시할 순 없으나 전에 없는 혁신적인 서비스라고 볼 순 없다”면서 “무료배송 역시 한철일뿐 지속 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오는 2023년 상장을 앞두고 단숨에 몸집을 불리려는 11번가와 호시탐탐 한국 시장 진출 기회를 노려온 아마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프라임 비디오’ 등 콘텐츠 제휴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