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마켓워치]<26>파월이 꺼내든 평균물가목표제(AIT)

`유연한 AIT` 천명한 파월…연준 물가목표제의 대전환
`안정적 물가관리` 제쳐두고 `최대고용`에 방점 찍어
작동 않는 필립스곡선…자연실업률→유휴노동력 집중
일러야 2022년 말 유휴노동력 해소…장기간 통화부양
AIT 도입시기부터 인플레 측정기간 등 변수도 다양해
  • 등록 2020-09-05 오전 7:22:17

    수정 2020-09-05 오전 7:53:32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현재의 사이클을 멈춰 세우고자 합니다.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연간 2%)를 밑도는 건 경제에 심각한 위험이 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연준은 고용시장을 강하게 촉진시키는데 크게 집중할 것입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각국 중앙은행장들의 연례회의인 잭슨홀미팅 기조연설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앞으로의 연준 통화정책 변화를 이 같이 천명했습니다. 이번 연례회의의 큰 주제가 `향후 10년의 길을 묻다: 통화정책에 대한 영향`이었으니, 파월 의장의 이 얘기는 적어도 미국 경제가 코로나19의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시기까지 연준 통화정책이 어떻게 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이던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날 이후 귀가 따갑게 들었겠지만, 파월 의장이 언급한 건 한 마디로 `유연한 형태의 평균물가목표제(AIT·Average Inflation Targeting)`입니다. 이어 그 연설 직후 연준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부연자료가 파월이 말한 AIT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 될 듯 한데요. 연준은 AIT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해서 2% 목표를 밑도는 기간 이후에는 물가가 일정기간(some time) 동안 2%를 완만하게(moderately)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하는 통화정책으로 수정한다”라구요.

연준이 2% 물가목표를 제시한 이후 실제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가 2%를 넘은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AIT에서는 과거에 물가가 2%를 밑돌았던 시기를 포함해 기간 평균으로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파월이 말한 `유연한 형태`입니다. AIT를 도입하는데, 그 운용은 기계적이고 엄격하지 않게, 유연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어떻게 유연하게 하겠다는 걸까요. 연준의 설명을 감안하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넘어서도록 놔두겠지만 그 기간은 아주 길진 않은 `일정기간`이라고 못 받았구요. 특히 2%를 잠시 넘어서더라도 그 상승세가 너무 급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완만하게` 넘어서는 것만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최근의 연준 통화정책 변천사를 대략 짚어보고 넘어 가는 게 이해를 도울 듯해서 잠시 시계를 41년 전인 1979년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당시는 오일쇼크로 인해 미국 경제가 고(高)물가, 저(低)성장이 겹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허덕였습니다. 이에 지미 카터 대통령은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앉혔습니다. 볼커 의장은 높은 물가를 때려잡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통화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연 12%에 달하던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최고 20%까지 올리는 극단적 처방을 내렸죠.

그러다 지난 2006년 취임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한 뒤 서서히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했는데요. 이 때 시장 충격을 줄이려다보니 연준 통화정책 결정을 보다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바꿔야 했습니다. 2012년 1월 버냉키 의장은 물가관리 목표치를 처음으로 연간 2%라는 수치로 제시했습니다. 이는 `향후 인플레이션이 연간 2%가 넘을 것으로 예상할 때 미리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겠다`는 약속이었죠. 여기서 중요한 건, 인플레이션을 `예상할 때`, `미리` 통화정책을 쓴다는 겁니다.

이와 비교하면 파월의 AIT는 근본적인 정책의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볼커가 만든 `엄격한 물가 안정 위주의 통화정책`이 41년 만에 폐기된 것이고, 버냉키가 세운 `2% 목표가 예상될 때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통화정책`도 바꿔버린 것이니까요.

연준의 듀얼 멘데이트. 인플레를 2% 목표 이내로 유지하면서 실업률을 현재 추정하는 자연실업률인 4.1~4.2% 정도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AIT는 지속적으로 너무 낮은 인플레이션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인플레가 일시적으로 2% 목표를 넘어도 용인할 수 있다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는 겁니다. 특히 중요한 건, 지금까지는 앞으로 몇년 간의 단기, 중기 물가 전망을 보고 인플레이션 여부를 판단했다면, 앞으로는 과거 물가지표까지도 정책의 결정요소로 반영하겠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파월 의장과 연준은 왜 이런 변화를 감행하기로 한 걸까요. 그건 한 마디로,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유로존 재정위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이어지는 잇딴 위기로 노동시장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음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는 연준의 이중 정책목표(dual mandate)는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입니다. 연준 표현으로는 `안정적인 물가와 최대한의 지속가능한 고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여건을 촉진시키는 것`입니다. 말이 좋아 이중 정책목표이지, 이 둘을 동시에 달성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연준은 물가안정실업률(NAIRU)이란 지표를 애용해 왔습니다. NAIRU는 물가가 너무 오르거나 떨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의 이상적 실업률을 뜻합니다. 즉 인플레를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을 만큼의 실업률이고, 사실상의 완전고용 수준에서도 유지된다고 해서 자연실업률이라고도 하죠. 현재 이 수치는 4.1~4.2%라는 게 연준의 판단입니다.

디롱-서머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은 GDP 갭과 실업률 갭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여기서 실업률 갭을 판단하는 지표가 유휴노동력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건데요. 영국 경제학자인 필립스는 실업률과 화폐임금 상승률 사이에 매우 안정적인 함수관계가 있다는 걸 모델로 제시합니다. 간단히 말해 이런 뜻입니다. 경제가 좋아져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이 오르고 그로 인해 물가 상승률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하구요.

이 때문에 기존에 연준은 실업률이 낮아지기 시작하면 긴장하기 시작하죠. 혹여나 이 낮아진 실업률이 2% 목표를 넘어서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할까 봐서요. 그래서 NAIRU라는 지표를 예의주시하는 것이죠. 그런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연준이 2% 목표를 제시한 지난 2012년 이후 연준이 목표로 삼는 물가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이 2%를 넘어선 건 두어 차례 손에 꼽을 정도였죠. 특히 2018년부터 실업률이 NAIRU에 도달했다는 관측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도 인플레는 위로 튀지 않았죠.

이처럼 필립스곡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이를 폐기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문제는 노동시장에서의 `유휴노동력(Slack)`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입니다. 연준 판단도 그렇구요. 유휴노동력이란 노동시장에 나와 있으면서도 생산활동에 동원되지 못해 놀고 있는 노동력을 말합니다. 이런 유휴노동력이 많다는 건, 실업률이 낮아져도 근로자들의 실제 임금 인상률이 크게 높아지지 않다는 것이고, 이는 물가 상승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 변화에 맞춰 연준은 앞으로 통화정책을 짤 때 NAIRU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실업률이 물가를 자극하는 힘이 떨어졌기 때문이죠. 대신 유휴노동력이 얼마나 해소되는지를 살피겠다는 겁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때 1000만명까지 늘어난 미국 내 유휴노동력은 코로나19 이전에도 100만명 가까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6개월 간 직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영구 실직한 미국인이 벌써 340만명에 이르니 유휴노동력은 다시 급증했을 것이고, 이를 해소하는 데에는 또다시 수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그 시점을 일러야 2022년 말 또는 2023년 이후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시점까지 인플레이션이 상당히 큰 폭으로 일어나도록 연준은 통화량을 계속 늘리는 전략을 쓸 것입니다.

단, 변수는 파월 의장이 말한 `유연한`이라는 대목입니다. 그런 큰 폭의 인플레이션을 어디까지 허용해줄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연준이 평균적인 물가 상승률을 측정하는 기간이 얼마인가가 핵심이 될 겁니다. 그 논의가 이번 9월 FOMC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코로나19 영향만 생각하면 3년 정도 평균을 내도 되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물가 상황까지 감안한다면 10년까지 길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이 길수록 연준의 통화부양도 길어질 수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동안 유휴노동력(=실업률 갭)이 물가 상승을 가로 막았다면 2014년부터 경기가 살아나면서 달러화 강세가 인플레를 억제해오고 있다. 다만 올들어서는 다시 유휴노동력 영향이 커졌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기저효과를 감안해야 겠지만, 그래도 최근 미국 내에서 근원 PCE물가가 꿈틀대는 모습을 보이면서 장기 국채금리가 위로 올라가고 있으니 말이죠.

실제 하버연구소에 따르면 근래 낮은 인플레이션은 유휴노동력과 달러화 강세가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달러화 강세가 크게 누그러진 상황에서는 유휴노동력이 적당히 줄어들면 다시 인플레이션이 거세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물가 상승률이 2%를 일시적으로 넘더라도 그 양상이 가파르게 나타난다면 언제든 금리 인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게 연준의 스탠스일 듯 합니다.

연준의 유연한 AIT 도입은 분명 달라진 경제여건에 대한 능동적 대응이며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디테일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여전히 이를 언제 도입할지, 물가 상승률 평균을 판단하는 기간을 몇 년으로 부여할지, 어떤 형태의 인플레 오버슈팅까지는 인내할 것인지 등이 불확실합니다.

다만 미 의회에서의 추가 재정부양 합의가 계속해서 늦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연준의 AIT 도입이 예상보단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또한 과거 테이퍼링 텐터럼(=긴축 발작)이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연준으로서는 이번 대규모 통화부양책에서 발을 빼는 출구전략 역시 매우 장기간에 걸쳐 신중하게 진행할 겁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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